"부부가 함께 자야 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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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프랑스 신문 르몽드에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남녀가 꼭 함께 자야 하는가’라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기사는 부부가 함께 자기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일 뿐 전혀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부부가 한 침대에서 서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면서도 차마 불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잘 때 평균 40~60번 움직이고, 남성의 3분의 1과 여성의 6분의 1이 코를 곤다. 수면에 야심이 없는 신혼 때라면 모를까, ‘한 침대 두 사람’의 편안한 잠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게다가 인간의 체격이 점점 커지면서 옛 규격의 더블베드는 더 이상 두 사람이 자기에 넉넉한 공간이 아니다.

이 기사는 또 프랑스 부부의 잠을 망친 책임을 세계 최대의 가구업체 이케아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케아가 보급한 오리털 이불을 부부가 서로 끌어당기다가 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원래 북유럽에서는 부부가 1인용 오리털 이불을 따로 덮고 잔단다. 하지만 프랑스는 부부가 옷을 입은 채 얇은 담요를 함께 덮고 자는 게 일반적 관습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2인용 이불을 팔면서 사용설명서를 넣지 않았다. 오리털 이불이 따뜻하다 보니 옷을 입지 않고 자다 이불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프랑스인들의 40%가 수면장애 문제를 호소하고 있으며, 1인당 신경안정제 사용량이 세계 최고라는 거다. 사람이 일생 동안 24년을 잠으로 보내는 걸 생각하면 그저 웃고 넘어갈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인들은-아니 우리는- 부부가 한 침대를 쓰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는 “부부가 함께 자는 건 가톨릭이 강요한 문화”라고 말한다. 특히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교(異敎)의 관습을 배척하고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부부 침실을 신성시한 전통에 말려든 결과라는 것이다.

문화가 숙면의 가장 큰 적이 돼버린 셈이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잠뿐만 아니라 그처럼 강요당한 문화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사례는 많다.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대선에서도 그런 예가 발견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은 양보 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재정적자 감축 방안이나 건강보험 개혁, 감세, 뭐 하나 타협되는 게 없었다. 이번 회기 동안 처리된 법률이 역대 최저 기록에 근접할 정도였다. 그런 갈등은 이번 대선에서도 똑같이 이어졌고, 양당의 후보는 서로의 주장만 거듭 고집하고 있다.

자기들만 옳다는 믿음을 상식으로 포장해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이 어찌 숙면을 취할 수 있겠나. 미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가 각각 35%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정쟁에 지친 40% 정도가 무당파로 돌아섰다는 통계가 있다. 프랑스인들처럼 수면 문제를 호소하는 40%인 것이다.

겉모습은 반대지만 우리네 경우도 결국 닮은꼴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명의 대선 후보 공약이 모두 거기서 거기다. 공약만으로 보자면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다. 표를 얻으려고 이것저것 끌어다 차려놓은 결과다. 경제민주화가 있어야 하고, 일자리 창출도 있어야 하며, 복지도 빠질 수 없는 대목이다. ‘어떻게’는 없어도 ‘무엇을’은 있다. 그래야만 더 많은 유권자를 유혹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결국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강요된 상식과 다를 게 없다.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막연히 옳은’ 상식에 사로잡혀, 자기 정책을 더욱 선명하게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본색을 흐리기 위해 다른 진영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대선 후보보다 주변인들이 더 시끄러운 게 그래서다. 침대보다 오리털 이불에 더 집착하는 형국인 것이다. 어차피 서로 끌어당기느라 밤잠을 설치게 될 텐데 말이다.

이런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어찌 국민이 단잠을 기대할 수 있을런가. 얼마나 많은 국민이 밤잠을 설치게 될지 벌써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더블베드보다는 트윈베드를, 그게 어렵다면 1인용 이불을, 그것도 힘들다면 제대로 된 사용설명서라도 제시하기 위해 고민하는 후보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면 그게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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