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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그늘 겨냥한 따뜻한 돌직구 이번 타깃은 미혼모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수현이 돌아왔다. 안방 흥행불패의 신화, 시청률 미다스의 손, 국내 드라마의 대표작가인 그녀다. 전작인 SBS ‘천일의 약속’(2011)에서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멜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장기인 코믹터치 홈드라마를 택했다. JTBC에서 27일부터 주말 밤 8시50분에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정을영 연출)다.

푸념 같은 제목의 ‘무자식 상팔자’는 전형적인 김수현표 홈드라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대로, 자식 혹은 가족 때문에 분란이 생기고 속 끓이지만 또 그 때문에 살아가게 되는 평범한 우리네 이야기다. “저출산 시대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제목이 자칫 오해를 살까 했는데 다행히 역설을 이해해 주는 것 같다”고 작가는 말했다.

서울 외곽에 모여 사는 3대 가족이 주인공이다. 전직 군인으로 융통성 없고 인색한 아버지(이순재)와 평생 눌려 산 어머니(서우림), 그리고 세 아들 부부 가족이다. 교사 출신의 큰아들(유동근)은 줏대 없이 사람만 좋아서 간호사 출신인 똑부러진 아내(김해숙)에게 꼼짝도 못한다.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가 정년퇴직한 둘째(송승환)는 억척스러운 짠순이 아내(임예진)와 사사건건 부닥친다. 셋째 아들 부부(윤다훈·견미리)는 철부지 닭살 커플. 말을 잘 옮기는 가벼운 성품 덕에 분란의 핵이 된다. 거기에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판사였지만 어느 날 만삭의 홀몸으로 나타나 가족에게 충격을 안기는 손녀(엄지원) 등이 얽힌다.

대가족을 무대로 한 김수현 홈드라마의 강점은 강한 일상성, 평범성이다. 막장 아니면 판타지라는 도식에 밀려 어느덧 TV드라마에서 사라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풍경들을 그려낸다. ‘안방극장’이라는 말대로 TV라는 일상적 매체에 가장 맞는 리얼한 드라마다. 매번 비슷한 인물과 갈등이 반복되는 듯해도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것은 그 일상성이 획득한 진실성 때문이다. 재미와 극적 효과를 위해 일상을 분칠하거나 일상을 저버리지 않는 그의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이 진짜 인생, 진짜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홈드라마라는 기본 얼개 안에 변해가는 삶의 가치, 세상의 풍속도를 반영해 온 것도 주효했다. 가령 ‘엄마가 뿔났다’는 중년 여성의 파업을 그렸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홈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동성애 커플을 등장시켰다. ‘무자식 상팔자’에는 미혼모 판사가 나온다. 아이를 원하지만 기성 가족질서에 대해 반감을 갖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을 풀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고령화 사회 진입과 함께 점차 새롭게 부상할 은퇴 이후의 삶, 중년의 위기 등도 다룬다.

한때 김수현 홈드라마는 가부장과 전통적 가족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 장르로 오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수현은 가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리고,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정직하게 담아냈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시선은 늘 따뜻했다. 별다른 극적 과장과 장치 없이 가장 올드한 홈드라마라는 틀 속에서 인간과 삶의 진실을 말하고 긍정하는 작가. 그가 작가인생 내내 최고의 작가였고, 도저히 대체될 수 없는 작가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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