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대선 자금 규모 알면 국민들 기겁할 것"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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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대선을 치렀다.”

이명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그동안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을 적게 썼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2009년 5월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은 미국 워싱턴에서 “이 대통령이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하진 않겠지만, 선거운동 때 대기업으로부터 단돈 1만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하진 않겠지만’이란 전제는 정확하게 3년 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를 받던 그는 2006년 파이시티 사업 시행사로부터 6억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여론조사 등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발언했다.

대선자금은 역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투명한 입출금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터지면 언제든지 대형 사고로 치달았다.

이 대통령은 대선이 끝난 뒤 “경선 때 21억8098만원, 대선 때 352억1322만원 등 총 373억9420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실제론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특히 박근혜 후보와 맞붙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전은 대선 본선 수준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당에 많은 돈이 뿌려졌다는 소문이 많았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뿐 아니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로비 의혹,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대선자금 마련 의혹이 그런 맥락에서 거론된다.

이 대통령의 전임자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말 “(2002년 대선 때) 우리가 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모금액은 알려진 것만 823억원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의 불법 자금은 8분의 1 수준인 113억원이었다. 대통령직을 걸었지만 불법 모금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대선자금은 역대 정권 아킬레스건
2002년 대선 직전 현대자동차 그룹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법률고문이었던 서정우 변호사와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만났다. 현대자동차 그룹 측은 서 변호사에게 차에 가득 실은 사과상자들을 건넸다. 1만원권 지폐로 꽉 찬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금액은 총 100억원이었다. 서 변호사는 같은 방식으로 삼성, LG, 대한항공 등에서 57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전 상임고문은 2002년 3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2000년 전당대회 때 권노갑 고문에게서 2000만원을 받았으며 2억4000만원을 선관위 신고 때 누락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의 최대 정적은 정치자금이다”고 고백했다.

5년 전인 1997년 대선에선 ‘세풍(稅風)’이 있었다.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현대, SK, 대우 등 23개 대기업에서 세무 혜택을 미끼로 166억3000만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 모금한 것이다. 이 전 차장 등 사건 연루자들은 혐의를 받자 미국으로 도피하거나 잇단 불출석으로 수사를 지연시켰다. 그러다 2004년 4월 대법원 최종 판결로 유죄가 확정됐다. 당시 검찰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자금을 모금하던 임채주 전 국세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한다. 고맙다”고 격려한 사실은 확인했으나 자금모금 과정에서 이 전 총재가 구체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확보하진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노태우 회고록엔 “1987년 대선 때 선관위에 신고 금액인 130억원 외에 비공식적으로 2000억원을 더 썼다”고 적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영삼 후보 진영에 있던 김종필 전 총리는 “대선자금 규모를 알면 국민이 기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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