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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신은 왜 세상의 악에 대답 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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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무신예찬
피터 싱어·마이클 셔머 등 50인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552쪽, 2만5000원

‘하물(荷物) 숭배’라는 게 있다. 남태평양 원주민이 유럽 탐험가로부터 전해 받은 하물, 즉 통조림·라디오·농기구 등 서양 문물에 흠뻑 빠진 나머지 이들 물건을 조상신이 보내온 하사품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최근 낸 『종교란 무엇인가』(김영사)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뭔가 믿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신간은 그런 진단에 펄쩍 뛸 만한 사람들의 얘기다. 물리학자, SF작가, 철학자 등 다양한 계층의 필자 50명이 신이 없다는 논리를 펴거나 자신이 무신론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펼쳐 보인다. 무신론마저 종교에 대한 다양한 신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오 교수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되겠지만 50인의 무신론 예찬은 다채롭다.

 물리학 교수 그레고리 벤포드의 글 ‘악(惡)과 나’는 다분히 감성적이다.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농업을 가르치다 2차 대전을 맞아 직업을 군인으로 바꾼 아버지, 끝까지 기독교 신앙을 고수했던 어머니,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을 차례로 소개하며 자신이 무신론자가 된 이력을 밝힌다. 벤포드의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문제 제기는 다음과 같다.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나치의 홀로코스트 같은 만행은 왜 막지 않았나.”

 영국 개방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니콜라스 에버리트의 글 ‘신은 얼마나 자비로운가?’는 보다 정교하다. ‘고통에 의거한 무신론 논증’이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신이 있는데도 거대한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는 유신론자의 대답을 차례로 소개한 후 이를 반박하는 무신론을 꺼내 든다.

 유신론자가 내놓는 단골메뉴 중 하나는 신이 ‘더 큰 선한 뜻’을 펼치기 위해 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에버리트는 정작 유신론자들이 거대한 악을 상쇄할 만한 신의 뜻이 무엇인지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자유의지가 악의 원인이라는 유신론자의 해명도, 총 맞은 사람을 자비로운 이(신)가 돌봐줬다고 총 쏜 악당을 용서하란 말이냐는 지적에는 다음 대응이 궁해진다.

 제목처럼 책의 내용은 일방적이다. 하지만 종교가 있다고 해서 책장을 덮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무신론 논의가 풍부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유신론을 고수하고 싶다면 상대방(무신론)의 논리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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