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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악몽의 연대기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중앙일보

입력

그런 꿈이 있다.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여 눈을 떠도 꿈을 깬 것 같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퇴색되어도 어느 순간 의식의 밑바닥에서 둥실 떠올라 나의 전신을 훑고 지나는, 기이하고도 섬뜩한 꿈. 무고한 두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고 자신의 총살형을 단호히 요구한 미국의 사형수, 개리 길모어의 숨겨진 가족 비화가 바로 그러한 꿈과 같다.

개리의 살인동기를 파헤치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동생 마이클의 의혹은 ‘왜 그가 살인자가 되었을까?’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원류가 자신의 가족사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진실과 대면하고자 하는 마이클의 처참한 여정은, 한 인간이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질기고 깊게 관여하는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유기성과 필연성으로 얽혀 있는 숙명의 엄중함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이클이 밝히고자 했던 진실, 개리가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폭력적 에너지의 기원은, 안타깝게도, 비단 그의 가족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추적의 끝은 바로, 미대륙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적 피의 역사와 현대 미국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치러야 했던 타락과 폭력, 가부장제가 옹호해온 부권의 독재와 횡포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책의 서문에 쓰인 “죽은 자들에게는 무엇인가 감춰진 비밀이 있다”라는 프로스트의 문구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이는 개리 길모어라는 한 개인의 경악스러운 과거사뿐 아니라, 백 년을 거슬러올라가 길모어 일가에 깃든 사령(死靈)의 계보까지도 포함한다.

가족의 일이었지만 그것의 맨얼굴을 알지 못했던 마이클과 숨막히는 긴장감으로 그의 이야기를 쫓아갈 독자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던진 몇 마디 말을 들어보자.

“마이클이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완성했다 해서 과연 유령의 추적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아마도 각자의 유령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해설 중에서) (황여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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