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출판사들 일제히 만화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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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학과 지성사, 문학동네 등 명망있는 순문학 중심 출판사들이 일제히 만화 출판에 뛰어들어 시장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 출판사들의 만화 진출은 얼마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출판계도 무한경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요즘, 제품 다양화를 통한 살아남기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가장 눈에 띄는 출판사는 문학과 지성사. 대표적인 순문학 위주 출판사인 문학과 지성사는 그간 견지해 온 '문학적 엄숙주의'를 내던지고 다음달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만화를 선보인다.

이 회사가 펴낼 작품은 유럽 만화 「아스테릭스」시리즈로, 체구는 작지만 꾀돌이인 아스테릭스가 우둔하지만 착한 오벨릭스와 함께 로마 제국에 맞서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

1961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31권이 출간, 50여개국에 번역 소개된 프랑스 국민만화다. 획기적인 변화를 보인 문학과 지성사측은 앞으로 오락 중심의 기존 만화출판 경향에서 탈피,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작품을 낼 계획이다.

민음사의 자회사인 황금가지도 판타지, SF물에서 만화로까지 범위를 넓혔다. 최근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사토나카 마치코의 「만화 그리스 신화」.

신화 전문가 이윤기씨가 감수한 이 작품은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그리스 신화를 그림으로 재구성한 것. 빽빽한 활자체의 무게에 눌려 신화 읽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황금가지는 지식의 입문서로 기능하면서 어른들이 읽어도 즐거운 '교양만화'에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나올 작품도 교양만화인 일본의「만화과학 위인전」. 지난해 설립된 문학동네의 만화전문 자회사 '애니북스'도 미국 작가 마이클 터너의 「심연」(Fathom) 출간으로 만화시장 타진에 나섰다.

「심연」은 미-일 공동해양개발기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모험을 그린작품. 개발기지에서 일하게 된 해양생물학자 애스펜 매튜스는 과거 자신의 부모를 죽인 물의 왕국 지도자 킬리안과 대결한다.

탐미주의적 유럽 만화와는 대조적으로 현란한 필치와 큰 스케일이 특징.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중인 대작이다. 문학동네의 만화 출간 역시 출판계 불황 속에서 살 길 찾기라는 게 출판사측의 설명.

이 출판사들의 만화 진출은 일차적으로는 출판시장 다변화를 통한 활로 모색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만화시장을 '빌려보기형'에서 '서점 판매형'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정홍수 문학동네 편집장은 "장기적으로 만화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겠느냐"며 "대본소에 비치되기 보다는 서점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성 있는 만화를 펴내겠다"고 밝혔다.

장은수 민음사 편집장도 궁극적으로 질 높은 작품을 낼 경우, '사보는 만화로의 전환'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경쟁력 높은 기획력과 인력을 갖춘 유명 출판사들의 의욕적인 출발이 침체된 국내 만화시장의 새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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