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외교관’ 구평회 E1 명예회장 별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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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02면

LG 창업 1세대인 구평회(사진) E1 명예회장이 2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인 고인은 LG·GS·LS 등 범LG 계열 기업의 성장과 재계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 공립중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51년 럭키화학(현 LG화학) 지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럭키화학 뉴욕사무소장, 호남정유 사장, 여수에너지·럭키금성상사·럭키금성경제연구소 회장 등을 지냈다. 특히 67년 미국 칼텍스와 합작해 국내 첫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현 GS칼텍스)를, 84년에는 한국 최초의 액화석유가스(LPG) 전문업체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LG그룹과의 계열 분리로 2003년 출범한 LS그룹을 형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동생인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이끌었다.

고인은 외국어 실력과 친화력이 뛰어나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렸다.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쳐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풍부한 인맥을 구축했다. 한미경제협의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 국제회장, 한국무역협회장, 한일경제협회 고문,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유치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인이 태평양경제협의회 국제회장을 맡은 건 고인이 처음이었다.

무역협회장 시절에는 사업비 1조2000억원 규모의 한국종합무역센터(COEX) 건립을 주도해 무역 인프라 구축에 앞장섰다. 2002 월드컵 유치위원장이던 96년에는 일본 단독 개최로 기울던 국제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켜 한ㆍ일 공동 개최를 성사시켰다. 당시 그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2시간 반 동안 “미국과는 한ㆍ일 모두 동맹국인데 어느 한쪽이 물러나면 미국의 동북아 외교에 큰 실패”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남 여사와 장남 구자열 LS전선 대표이사 회장, 차남 구자용 E1 대표이사 회장, 3남 구자균 LS산전 대표이사 부회장, 딸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 등이 있다. 장남인 구자열 회장은 “아버지는 ‘묵묵히 일하고 깨끗이 떠난다’는 평소 좌우명을 지켜온 참기업인으로 우리 모두의 귀감”이라며 “기업 경영에서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광주공원묘원. 02-30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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