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이혼 가정 부모와 자녀 ‘재회 캠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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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회룡 기자]

부모가 헤어지면 자녀의 가슴은 무너진다. 아빠를 쫓아가면 엄마와 멀어지고, 엄마와 같이 살자면 아빠와 생이별을 각오해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1만4300여 쌍에 달한다. 이혼 당사자인 부부도 힘들지만, 부모가 남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자녀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부부가 별거에 들어가거나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 자녀들은 부모 중 어느 한쪽과 살아야 한다. 양육권이 없어 자녀와 같이 살지 않는 아빠나 엄마(비양육친)도 정기적으로 자녀를 만날 권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2~3주에 한 번씩 겨우 얼굴이나 보는 아빠나 엄마에게 아이들은 점차 서먹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6~7일 이틀간 경기도 남양주시 다윗동산에서 ‘비양육자 부모-자녀 간 관계 개선 캠프’가 열렸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한부모 가정에서 살게 된 아이들과 비양육친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는 자리다. 서울가정법원과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일곱 번째 캠프에는 함께 살고 있는 엄마 대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빠와 아이, 양육자인 아빠 대신 따로 살던 엄마와 아이 등 11가족 30여 명이 참여했다.

 가벼운 몸풀기가 진행되고 비양육친과 자녀들 간에 긴장이 누그러지자 가족들은 묻어뒀던 상처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당사자가 직접 가족 구성원의 관계도를 그리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는 드라마 치료를 통해서다. 관계도 내에서 아빠는 엄마가 돼 보기도 하고 아들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딸이 아빠의 자리에 서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본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가족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 이혼 과정에서 자녀가 겪은 상처, 아이가 생각하는 가족의 문제점을 부모가 직접 느낄 수도 있다.

 역할극이 시작되자 부모의 싸움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냥 이대로 엄마랑만 살면 안 돼요? 어차피 아빠는 우리랑 같이 살 수 없어요.”(딸)

 “저도 그냥 누나랑 엄마를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아들)

 남매는 ‘멀리 떨어진 아빠-아빠를 등진 엄마-엄마와 바싹 붙어 마주보는 남매’의 관계도를 만들었다.

 “애들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처가 때문이에요. 고시 공부가 길어져 취직이 늦었고, 벌이가 시원찮으니 처가에서 이혼을 종용한 겁니다.”(A씨)

 A씨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아이들이 그린 가족과 자신이 그린 가족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문가들은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노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사관은 ‘아이들에게 상대 배우자에 대한 비난을 하지 말 것, 본인의 의사를 주입하려고 하지 말 것, 자녀의 감정을 존중할 것’ 등을 주문했다. 소송 과정에서 아이들이 부모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우려가 있어서다. 특히 상대 배우자에 대한 비난은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다. 감정이 격해진 A씨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처가를 비난한 셈이다.

 얼굴이 벌게진 A씨에게 치료사의 질문이 시작됐다.

 “큰딸 자리에 직접 서 보세요. 어떤 기분인가요?”(치료사)

 “부담이 많이 될 것 같네요….”(A씨)

 큰딸의 자리에 서자 눈앞에 부인이 보였다. 엄마를 지켜내야 한다던 딸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아들의 자리에 서 보세요. 어떤 기분이 드나요?”(치료사)

 “음, 집안을 지켜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등 돌린 아빠 대신 자신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는 아들의 걱정이 느껴지기도 하고….”(A씨)

 “부담이 되는데도 아이들은 아빠랑 살기 싫다고 하네요. 왜 그럴까요?(치료사)

 “…….”

 “아빠가 왜 그렇게 싫으니?”(치료사)

 “술 마시면 엄마 때리고. 말 안 듣는다고 우리 때리고. 아빠는 술만 마시면 이상해지는 사람이에요.”(아이들)

 A씨는 침울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술 마시고 아이들에게 상처 준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동안 아빠가 너희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윽박만 질렀네. 항상 아빠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힘들어서 술을 마신다는 게 너희들에게 상처가 됐구나. 너무 미안하다.” 어렵게 말을 꺼낸 아빠 앞에서 아이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문가들은 이혼 과정에서 생기는 아이들의 상처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부부가 함께 화목하게 사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부모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조언이다. 캠프에 참여한 신영희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아이들은 이혼한 엄마(혹은 아빠) 대신 자신이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부쩍 성숙해진다”며 “감정을 숨기거나 상처받지 않은 척하는 게 습관이 돼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7회째 캠프를 주관한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송향섭 센터장은 “부부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아이들이 상처받거나 비뚤어지지 않게 끊임없이 대화하고 보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아이들도 부모 얘기가 나오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이유 없이 주눅 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다시 11가족이 모두 모였다. B씨가 드라마 치료를 자처했다.

 “10년간 아들을 두 번밖에 못 봤어요. 아내가 반대했고, 저도 염치가 없었고…. 아내가 정말 착합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어요. 참지 못한 아내가 별거를 원했고, 10년간 떨어져 살았죠. 이젠 다시 만나고 싶어요.”(B씨)

 “아빠를 만난 것은 참 좋아요. 그런데 자주 만나지는 못할 것 같아요.”(아들)

 아빠는 아들이 부부 재결합의 매개가 돼주길 바랐지만 아들은 아빠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어두워지는 엄마가 생각나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가 아들의 자리에 한번 서 보시죠. 어떤가요?”(치료사)

 “좋은데요.”(B씨)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사이 안 좋은 엄마와 아빠를 양쪽에 두고 있습니다. 어떨까요?”(치료사)

 “음…, 난처하겠네요.”(B씨)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던 B씨는 이혼을 막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아들에게 부담을 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료를 진행한 한국드라마연구소 최철환 소장은 “아이가 10년간 떨어져 살던 부모를 잇는 접착제가 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며 “오랜 시간 엄마의 상처를 공유해온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동이 트고 다음 날 오전 체육대회가 열렸다. 함께 2인3각 달리기를 하고 풍선을 터뜨리고 훌라후프를 돌리며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은 어제보다 서로를 더 많이 어루만졌다. 전날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빠와 아들은 손을 꼭 잡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열 살 된 딸과 일곱 살 된 아들을 둔 아빠는 아이들을 엄마에게 보내며 손을 꼭 잡고 약속했다. “아빠가 더 잘할게. 너희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그동안 미안했어.”

 캠프 이후 법원은 비양육자 부모를 위한 사후 집단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임종효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비양육자 캠프는 2009년 시작해 지금까지 일곱 차례 진행됐고 200여 명이 참여해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며 “이혼 과정에서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부모들의 보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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