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3선 개헌 불가” 박정희와 대립한 원칙주의자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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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시대의 양심 정구영 평전
예춘호 지음, 이억순 기획
서울문화사, 568쪽, 3만원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박정희가 남긴 유명한 말의 하나다. 한국사회의 불행을 보다못해 군인의 길을 접고 정치에 뛰어들었으니 자기 또한 불행하다는 고백이리라. 그 말을 토해낸 전역식(1963년 8월) 직후 그가 찾은 곳이 공화당사였다. 입당 절차 때문인데, 당시 신원보증인은 정구영(1896~1978)이었다. 21세 연하의 최고권력자 박정희가 “선생님”이라고 깍듯하게 호칭했던 그는 공화당원 제1호다.

 그날 정구영은 ‘민간 정치인’으로 변신한 박정희 정계 등장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이 분명했다. 공화당 초대 총재와 당의장을 지냈던 그의 평전 『시대의 양심 정구영 평전』이 사후 34년 만에 등장한 게 반갑다. 빠른 사회변화 때문에 기억에서 잠시 멀어진 인물, 그러나 다시 기억해둘 이름이다.

1967년 4월 충남 온양역 앞 광장에서 제6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정구영. [사진 서울문화사]

 그는 대쪽 영감이었다. 이 책 제목이 암시하듯 공화당의 양심이자 정신적 지주로 통했다. 권력 실세라고 할 순 없었다. 현실정치의 비중 상 김종필·이후락·김형욱· 김재규·차지철·박종규 등 ‘권력의 뼈’에 밀린다. 정적(政敵)이었던 윤보선·김대중·김영삼과도 구분되지만, 그래도 정구영은 정구영이다.

 당내 민주화에서 박정희와 다른 제3의 길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3선 개헌 저지에 실패한 뒤 정계를 물러난 그를 두고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주하면 선생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 경성조선인변호사협회장을 지냈다. 50년대 대한변호사협회장도 지냈다.

 그런 그가 1963년 공화당에 합류하자 세상은 매우 놀랐다. 일부는 훼절-변절이라고 했지만, 새 정치와 산업화에 대한 목마름이 분명했다. 박정희를 통해 새 나라를 구현하려던 몸짓이었다. 하지만 이내 당내 일인 지상주의의 벽에 부딪혀 허덕여야 했다. 그래서 정구영은 박정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3선 개헌과 유신 등 장기독재 가능성을 당에서 가장 경계한 대표적 인물이 그였다. 그런 그는 이미 “3선 개헌안에 찬성하든지, 아니면 공화당을 탈당하시라”는 최후통첩을 받고 있었다. “민주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자신의 정치 신념 때문인데, 이 신간이 그걸 잘 드러낸다.

 책의 만듦새와 감각이 좀 낡아 보이지만, 기획력은 인정할 만하다. 그리고 좔좔 읽힌다. 저자는 예춘호, 중장년층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다. 공화당 사무총장 출신으로 민추협 부의장을 지냈다. 그 역시 3선 개헌 반대로 공화당에서 제명됐다. 이 책 기획자 이억순은 원로 언론인. 한국일보·중앙일보 기자였다.

 한 시대의 유산을 정리해준 이 책의 등장, 그리고 정구영과 그의 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마침 며칠 전이 유신 선포 40년이었다. 지난해로 5·16은 꼭 반세기를 넘었다. 올 대선에서도 과거사 논쟁이 벌어지며 그 중심에 박정희가 서있다. 이 와중에 나온 『시대의 양심 정구영 평전』은 흥미롭게 읽힌다. 반(反) 박정희이면서도, 각도가 약간 다르다.

 정구영의 아호는 청람(靑嵐), 맑은 아지랑이란 뜻이다. 그런 그에게서 조선조의 선비 윤리와, 근대적 법치주의 정신이 함께 느껴진다. 그런 청람식 민주정치, 그리고 원칙과 명분에 대한 소망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다. 반면 또 다른 평가도 가능하다. 정구영 식의 ‘샌님 정치’의 한계가 상당히 보인다.

 어차피 현실정치는 헤게모니와 노선투쟁, 그리고 목표에 대한 공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맹렬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사실 박정희가 있어서 정구영이 탄생했다. 그 반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선생님 정구영’ 없는 ‘황소 정당’ 공화당은 뭔가가 허전하다. 정치 그리고 사람 평가가 그래서 재미있음을 재확인시켜준 책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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