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총회] 사마란치 '역사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사마란치(80)체제가 16일 막을 내렸다. 1980년 모스크바 총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직에 오른 뒤 21년 만이다.

사마란치는 이날 후임 위원장을 선출하는 총회에서 신설된 명예위원장에 추대됐다. 위원장을 내놓은 이후에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에서 스스로 만든 자리다.

사마란치의 재임간 치적에 대해서는 공과가 엇갈린다.

IOC를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스포츠 기구로 발전시킨 점이 우선 공적으로 꼽힌다.

80년대 초까지 IOC는 월드컵 축구를 앞세운 국제축구연맹(FIFA)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무기로 갖고 있는 국제육상연맹(IAAF) 등 다른 경기단체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아마추어 선수만을 고집하는 올림픽으로서 프로 일색인 월드컵 축구와 육상을 대하기가 벅찼다. 사마란치는 '올림픽이야말로 최고의 경기력을 갖춘 대회여야 한다' 는 모토 아래 프로선수에게도 문호를 열었다. 88년 서울올림픽부터다.

앞서 85년에는 올림픽 파트너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도입, 올림픽 휘장 사용 대가로 협찬사로부터 매년 수백만달러의 돈을 거둬들였다. 방송 중계권에서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계약을 하면서 올림픽을 일약 부와 경기력이 어우러진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로 끌어올렸다.

또한 사마란치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야기된 동서 진영의 올림픽 보이콧(80년 모스크바.84년 LA) 사태를 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화합의 제전으로 이끌었다는 점도 치적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림자도 많았다.

99년에는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에 휘말려 최대 위기를 맞았다. 솔트레이크시티가 겨울올림픽을 유치할 당시 IOC 위원을 포함한 수뇌부에 막대한 뇌물을 뿌렸다는 마르크 호들러 위원의 폭로로 불거진 스캔들은 4명의 IOC 위원이 사임하고 6명이 축출되는 등 도덕성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IOC 위원들이 후보 도시나 해당 국가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일부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 이미지에 먹칠을 당했다.

과거 IOC 위원들의 뇌물 수수설이 각국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근거가 있느냐" 며 일축하던 그였다.

그래서 수익성만을 앞세운 무리한 마케팅.상업주의와 함께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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