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함께 노래 부르다보면 ‘동문의 정’ 절로 생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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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최봉림(52·31회)씨, 치과의사 김태성(48·35회)씨, 음악교사 고한승(46·37회)씨, 대학교수 유인권(45·38회)씨···. 이들의 화요일 저녁은 바쁘다. 업무를 마치고 오후 7시 30분까지 모교인 서울고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고 OB합창단인 리더타펠 서울남성합창단의 연습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길게는 20년, 짧게는 1년 넘게 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이 부르는 건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동문에 대한 자부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서울고 OB합창단 30여 명이 정중순 (왼쪽)씨의 지휘에 맞춰 ‘아름다운 아가씨’를 부르고 있다.

“저기 저기 저기 아름다운 아가씨~살랑살랑 예쁜 치마 나부끼면서~.” 9일 오후 8시 서울고 음악실. 학생들이 모두 귀가해 어둠뿐인 학교에 남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휘자 정중순(46·38회)씨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4중창의 멜로디가 음악실 안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다. “이 부분은 스타카토로 힘을 줘서 불러야 합니다. 퍼스트 테너부터 다시 한 번 가볼게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다시 노래 연습이 시작됐다. 이날 연습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30여 명. 평일 저녁에 진행된 연습치고는 굉장히 높은 참여율이었다. 다음달 18일 과천시민회관에서 정기연주회가 열릴 예정이라 연습의 강도도 다른 때보다 높았다.

 OB합창단이 처음 창단된 건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90년. 최봉림 회장과 재학시절 중창단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이 돼 “우리만의 예술 무대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2000년 처음 정기연주회를 진행한 이래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한다. 이번에는 15·17회 동문들로 구성된 시니어 합창단과 함께하는 무대도 마련돼 있다. 최 회장은 “비록 아마추어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어떤 프로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1년 가까이 준비한 연주회인 만큼 기대도 크다”고 말했다.

합창은 44년의 나이 차 뛰어넘는 힘

나란히 앉아 중저음의 목소리를 뽑아내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한 눈에도 나이차가 많아 보였다. 합창단 내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신흥윤(66·17회)씨와 현재 경희대 음악대학 성악과에 재학 중인 막내 전걸(22·61회)씨다. 이들의 나이차는 무려 44세. 강산이 4번 변할 만큼의 시대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건 ‘서울고’와 ‘합창’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처음 전씨가 음악실을 찾았던 지난해 9월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 눈에도 어려 보이는 남자가 음악실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먼저 다가가 “합창 연습하러 왔냐”고 물었고, 전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매번 연습 때마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신씨는 전씨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젊은 후배들의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설 자리가 줄어들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등장은 오히려 자극이 됐다. 옆자리에 앉아 전씨가 내는 음을 듣다 보면 귀동냥으로 배우는 게 많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음색이 한결 매끄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마추어지만 걸이는 프로잖아요. 합창에 선·후배가 어디 있겠어요.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 끌어주면서 시너지를 발휘하면 되는 거죠.”

 전씨도 합창단 활동을 통해 재학시절 느끼지 못했던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가 학교를 다녔던 3~4년 전에는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합창반은 그의 입학과 동시에 없어졌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그는 우연히 OB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를 알게 됐고, 그의 권유로 지난해 9월부터 합류하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서울고의 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재학시절 못한 동아리 활동을 이제야 하는 셈이죠.”

그리운 추억과 못 다 이룬 꿈을 노래

합창단원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건 교복을 입고 노래를 불렀던 학창 시절 추억도 한 몫 한다. 20~30여 년 전 일이지만 예술제를 준비하며 고생했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단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건 예술제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선배에게 빗자루로 맞은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7년 동안 예술제를 찾아가 후배들에게 일침(一鍼)을 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최 회장이었다. “긴장을 풀라는 사랑의 매예요. 우리 후배들이 무대에서 가장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애정을 듬뿍 담아서 때렸죠.”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후배들이 손사래를 치며 반박했다. 4년 후배인 김태성 단장은 “아무리 그래도 졸업하고 7년이나 학교를 찾아와 후배들에게 손을 댈 줄은 몰랐다”며 “서울고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위인”이라고 웃었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꽃도 피웠다. 예비고사를 한 달 앞 둔 시점에서 TV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일, 예술제가 끝난 뒤 촛불행사를 하며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촛불을 건네 준 기억, 학력고사 본 날 시내 한 가운데서 합창을 하고 헤어진 일화 등 끝이 없었다. 비록 나이와 시대가 달라도, 합창반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로 가득했다.

 그리운 추억만 나누는 게 아니다. 합창단 활동은 젊은 시절 못 다 이룬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는 디딤돌이 돼주기도 했다. 김정헌(43·41회)씨는 매주 화요일이면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음악실을 찾는다. 4년 위 선배인 고한승씨에게 개인 레슨을 받기 위해서다. 성악을 전공한 고씨는 현재 서울프랑스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다. 김씨의 재능을 알아본 고씨가 “시간을 좀 내서 개인레슨을 받아보라”고 제안한 것. 학창시절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만 했던 김씨는 “이제라도 꿈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합창단 활동이 아니었으면 평생 마음 속 한(恨)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전민희 기자
사진=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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