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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데까지 가 본 싸이의 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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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경민
뉴욕특파원

미국에선 골프가 대중 스포츠다. 동네마다 구청이 운영하는 골프장이 서너 개는 된다. 가끔 혼자 나가 낯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분위기가 서먹해 한국에서 하던 ‘라스베이거스 뽑기’ 게임을 가르쳐줘 봤다. 다섯 짝의 막대기 끝에 각각 빨간색과 초록색이 두 개씩 표시돼 있고 하나는 검은색이 칠해진 ‘뽑기 기계’부터 신기해 죽는다. 매홀 막대기를 뽑아 같은 색끼리 편을 먹고 내기를 하다 보면 셋 중 둘은 뒤로 자빠진다. 한국 사람은 다 천재라고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른다. 한국에선 ‘백돌이’(핸디 28 이상 초보자)도 아는 게임을 두고 무슨 과찬의 말씀!

 ‘가라오케’란 말은 일본이 만들었지만 노래방을 꽃피운 건 한국이다. 미국인 친구를 노래방에 데려가면 깜짝 놀란다. 한국 사람은 죄다 가수 지망생이었는지 궁금해 한다. ‘탬버린 신공(神功)’엔 아예 입을 못 다문다. ‘갈 데까지 안 가 보면’ 회식으로 쳐주지 않는 서울에서 갈고 닦은 솜씨가 오죽하랴. 이 친구들이 한국 관광버스에서 펼쳐지는 신기(神技)의 댄스 파티를 보면 아마 졸도할지도 모른다.

 뉴욕에 3년 넘게 살면서 잊혔던 한국인의 ‘신바람 DNA’를 요즘 싸이를 보면서 다시 떠올린다. 10대 아이돌의 예쁜 얼굴이나 조각 같은 몸매와는 거리가 멀다. ‘3단 고음’은 고사하고 절도 있는 팝핀과도 상관없다. 그냥 주체할 수 없는 끼를 갈 데까지 펼쳐보인 춤과 노래에 전 세계가 통했다. 강남스타일은 처음부터 세계무대를 겨냥한 게 아니었다. 철저히 내수용이었다. 가사에 영어라곤 ‘스타일’과 ‘섹시 레이디’ 딱 두 마디뿐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 4억 명이 열광했다. 뜻도 모르는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이쯤 되면 우리도 ‘커밍 아웃’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 사람에겐 타고난 끼가 있다. 단 1초도 심심한 건 못 견딘다. 한국에선 몰랐는데 외국에서 살아보니 실감한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학부모들은 ‘SKY대학’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SKY대학 보내는 게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시키기보다 어렵다는 게 한국이다. 그런데 SKY대학 나와 공부로 세계 제패한 인재가 있던가? SKY대학 못 간 나머지 95%를 패배자로 낙인 찍는 교육으론 제2의 싸이는커녕 한국의 미래조차 장담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국의 노래방 기계는 세계 최첨단이다. 그 좋은 기계, 술집에만 들여놓을 게 아니라 전국 초·중·고교 강당에 갖다 놓으면 왜 안 될까? 매달 각 학교에서 대표가수를 뽑아 학교 대항 ‘나가수’ 경연을 하면 학교가 난장판이 될까? 부모 몰래 PC방을 전전하는 아이들을 학교 PC랩으로 불러 게임왕 경연대회를 하면 아이들 미래에 먹구름이 잔뜩 덮일까? 큰아들이 다니던 미국 고교 강당에서 매년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학생 밴드 경연대회를 하는 걸 보면서 늘 떠오른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