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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불법이 문제가 아니라 괘씸죄가 문제다 이 문제도 문제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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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강일구]

언제던가. 복잡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 약속시간은 지났고 길은 모르고. 마침 왼쪽 차선에 경찰차가 있기에 창문을 열고 길을 물었다. 신호가 떨어지면 자기 앞으로 꺾어서 좌회전하란다. "이 라인은 직진인데…” 했더니 괜찮다며 웃던 경찰관. 경찰의 묵인하에 그가 빤히 보는 데서 불법을 감행하던 그 순간. 그가 고맙기도 했지만 또 웃기기도 했다. 법은 법이거늘 자기가 뭔데 기분 좋으면 봐주고 기분 나쁘면 벌금 물고. 하지 말라는 그 어떤(?) 일도 너그러운 경찰의 자비만 있어준다면 만사 오케이?

 일관성 없는 교육으로 인해 애들 교육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우리 딸들은 옷장 정리엔 ‘젬병’이다. 옷장을 뒤죽박죽 뒤엎어서 옷을 꺼낼 때마다 처음에는 야단을 쳤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기분에 따라 혼을 내기도, 봐주기도 했더랬다. 늦은 귀가 같은 야단칠 일이 생기면 옷장 정리를 문제 삼고 혼을 냈다. 성적이 쑥쑥 오른 날엔 내가 직접 옷장 정리를 해주기도 하면서. 결국 딸들 머릿속에는 ‘옷장 정리를 안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엄마 비위를 건드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란 이론을 심어준 덕에 딸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요즘 서울시가 그 꼴이다. 지금 ‘의무휴업일 영업제한’ 조례를 어기고 정상영업을 한 코스트코를 향해 강도 높은 단속을 하고 있는 중이다. 1차 점검일에는 구청과 합동으로 집중 점검을 한 결과 41건의 법 위반행위를 잡아냈다는데 그 적발된 내용이 ‘주정차 금지구역 위반, 휴대용 비상조명등 미점등’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다른 대형마트들도 단속하면 나올 법한 경미한 불법 사례들이다.

 경미한 법도 법은 법이니 지켜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잘못을 했다면 그 잘못을 가지고 혼을 내야 한다. 과태료가 적다면 과태료를 올리거나 영업정지 같은 강한 제재를 하거나. 누가 봐도 엉뚱한 주정차 금지나 비상조명 같은 것으로 트집을 잡는 건 보복성 의도가 짙어 보인다.

 12일 의무휴업제에 불복해 소송을 낸 다른 대형마트들이 또 승리했다. 이제 그들은 버젓이 일요영업을 계속할 거다. 소송도 내지 않은 코스트코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려면 이곳 실정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거다. ‘벌금 1000만원? 까짓것 하루 매상이 12억원이 넘는데 우린 벌금 내고 문 열고 돈 벌겠다’는 똥배짱으로 들이대는 코스트코도 정말 웃기고, 괘씸하다고 다른 걸로 트집 잡는 서울시도 그리 보기 좋지만은 않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려면 규정을 제대로 다 갖춘 다음 차차 규제함이 바른 순서다. 법집행 또한 일관성이 있어야만 힘을 갖는다. 예쁘면 눈감아주고, 미우면 톡톡 털어내고.

 ‘집안의 모든 규율은 엄마 기분에 따라 강도가 조정된다’는 딸들의 불만. 이제야 알 것 같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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