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선되든 세금 더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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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든 다음 정부에선 증세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선 주자들이 약속한 복지 확대가 결국 국민의 세금을 원천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미 유력 후보들의 캠프에선 증세론이 제기되고 있다. 방법이 다를 뿐 방향은 같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민주화위원회 이정우 위원장은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보편적 증세가 솔직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모든 후보가 솔직하게 증세를 하겠다고 얘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들 복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라며 “지금 그런 (논의를 할) 단계에 왔다”고 했다.

‘1% 부자 증세’에 집중하던 기존 민주당의 주장과는 다르며, 오히려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보편적 증세론과 비슷하다. 안 후보는 7월 발간된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 확충을 위해 소득 상위층뿐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은 함께 비용을 부담하며 혜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의 말은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김무성 총괄본부장의 ‘부유세 신설 발언’을 반박하면서 나왔다. 김 본부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꼭 필요한 곳에 복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증세를 통한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며 부유세를 개인 의견으로 거론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아직 세금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내진 않았다. 다만 ‘씀씀이를 줄이면 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복지 비용의 60%는 세출을 효율화하고 40%는 비과세·감면 축소, 세원 발굴 등으로 세입을 늘려 마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후보의 복지정책을 감당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장기 재정 전망과 재정정책 운용 방향’에 따르면 여야의 복지 공약을 그대로 따를 경우 2050년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102.6~114.8%로 치솟는다.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와 비슷한 수준이다.

 차기 대통령 임기인 2013~2017년 5년간, 새누리당의 공약대로 하면 75조3000억원, 민주당대로 하면 164조7000억원이 추가로 든다고 추산됐다. 여야 모두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확대, 의무교육 확대, 대학 등록금 인하와 같이 돈이 많이 드는 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위원은 “복지를 확대하자면서 증세를 얘기하지 않는 건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며 “일자리 확충과 경제성장만으로 복지 확대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조세부담률은 26%인 데 비해 한국은 20%다. 사회보험을 합한 부담률은 한국이 25%, OECD 평균이 35%다. 지난 9일 문재인 후보와 북유럽 대사의 간담회에서 라르스 다니엘손 스웨덴 대사는 “복지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조세제도뿐”이라고 했다. 문 후보는 북유럽 모델을 가장 중시하고 있고, 안 후보도 복지국가의 모범 사례로 스웨덴을 꼽았다. 모두 세금을 건드리지 않고선 유지할 수 없는 제도다.

 씀씀이만 줄여서는 복지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은 “경제성장을 고려한 자연세수 증가분, 지출 구조조정으로 연간 약 10조원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재정 건전성을 위해 소득세,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건강보험 등)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민의 ‘조세 저항’이다. 당장 소득이 줄어들 유권자들이 자기 몫이 아닌 듯한 미래의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후보도 “복지를 위해 사회적 대타결이 필요하다”고 했고, 안철수 후보도 구성원 간 양보와 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세금이 최대 이슈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제시한 감세 공약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시켜 성장을 돕고, 이게 다시 세수 확대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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