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순환출자 끊으려다 우량기업 해외로 넘어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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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해소에 돈을 쏟아부으라니, 투자를 말라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를 해소할 만큼 돈을 가진 기업이 별로 없다. 결국 우량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11일 경제공약을 발표한 뒤 재계에서 쏟아진 반응들이다.

 문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기존 순환출자 3년 내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키지 않을 경우 순환출자분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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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환출자란 A기업이 계열 B회사 지분을 갖고, B는 C회사를, C는 다시 A의 지분을 갖는 식으로 서로 돌아가는 고리형 지분 소유 구조를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의 33.6%를,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 모비스가 다시 현대차 지분 20.8%를 갖고 있다. 이런 순환출자 구조를 없애려면 현대차가 가진 기아차 지분을 팔아 치우거나, 아니면 모비스의 현대차 주식을 현대차가 사들여야 한다.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보면 기아차 지분을 내놓을 수 없으니 모비스가 가진 현대차 지분을 살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에는 또 현대차 → 기아차 → 현대제철 → 현대모비스 → 현대차로 이어지는 고리도 있다. 이런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약 11조66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경제연구소인 ‘착한자본주의연구원’은 추정하고 있다. 주식을 사는 돈에 각종 세금 등을 더한 비용이다.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 → 삼성전자 등 15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지닌 삼성그룹은 10조1700억원가량이 든다는 계산이다.

 재계에서는 “순환출자 해소에 쓸 돈을 투자하면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10억원을 투자해 평균 9.3명을 고용할 수 있다. 삼성·현대차가 순환출자를 풀기 위해 필요한 약 22조원을 투자에 쓰면 거의 2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소리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내놓은 재벌 개혁안은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안 되는 것들”이라며 “경제 성장을 위해 투자를 할 곳은 대기업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일본 도요타는 순환출자를 넘어서 두 계열사가 서로 주식을 보유하는 ‘상호출자’까지 하고 있고 루이뷔통을 가진 프랑스의 LVMH 그룹 역시 모두 순환출자를 하고 있다”며 “성급히 순환출자를 금지시킬 경우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현재 국내에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몇 조원을 쏟아부을 수 있는 대기업은 삼성이나 현대차 정도밖에 없다”며 “순환출자 없애기를 강제로 밀어붙이다 보면 우량 기업들이 해외에 매각되는 일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금산분리와 관련, 문 후보는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되고 계열사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9%에서 4%로 원상복구하고 비은행지주회사의 비금융 (손)자회사 소유를 금지시키겠다”고 했다. 여기에 가장 신경을 쓰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1%(106만 주)를 갖고 있어서다. 11일 종가 기준 13조8000억원어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은 기고문과 사설을 통해 한국 정치권이 대기업을 공격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같은 현실론은 외국 언론에서도 제기됐다. 라파엘 에미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11일자 기고문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한국식 모델은 유효하게 작동 중”이라며 “한국 정치권이 대선 정국에서 대기업들과 소모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위협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WSJ는 또 이날 사설에서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기업 때리기(bashing)를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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