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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외치던 잡스 빈자리 1년, 애플 실적보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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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사후 1주기인 5일 애플 홈페이지의 추모 영상에 등장한 그의 생전 모습.

5일(현지시간) 오전 10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시청엔 반쯤 내린 조기(弔旗)가 걸렸다. 애플을 창업해 이끈 고(故) 스티브 잡스의 1주기를 기리는 뜻이다. 세계 첨단 정보기술(IT)의 산실인 실리콘밸리, 그 안에 자리 잡은 쿠퍼티노는 잡스가 태어나 자라고 애플을 세운 곳이다. 마크 산토로 쿠퍼티노시장은 “조기 게양은 스티브가 지역사회에 준 위대한 선물에 대한 작은 추모”라고 말했다.

이날 애플의 홈페이지엔 ‘Remem bering Steve(스티브를 회고하며)’라는 주제의 영상이 떴다. 생전의 잡스 모습과 제품들을 담은 내용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스티브가 인류에 남긴 위대한 선물이 애플’이란 내용의 편지를 띄웠다. 잡스의 생애를 다룬 인사이드 애플의 역자이자 쿠퍼티노에 거주하는 임정욱 전 라이코스 대표는 “애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차분한 추모 분위기였지만, 잡스의 향취가 곳곳에 나는 듯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미국 반대편 뉴욕 맨해튼의 나스닥주식시장. 666달러에서 시작된 ‘Apple Inc.’의 주가는 2.13% 급락한 652.59달러로 마감했다. 잡스 의 빈자리가 커 보이는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앞서 사상 최고 분기(3분기) 실적을 발표한 데 이어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 팍스콘 공장의 파업설이 겹치면서 낙폭을 키웠다. 그래도 지난해 잡스가 사망한 날 주가 378.25달러보다 73% 뛴 수치다. 시가총액도 6117억 달러로 삼성전자(1817억 달러)의 세 배 이상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미 일간지 USA투데이는 5일자 1면에 ‘How high can Apple fly?(애플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을까?)’라는 제하의 기사를 냈다. 박병호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애플이 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이 회사가 언젠가 내리막길에 접어들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계론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미 전역에서 잡스의 추모 열기가 뜨거웠지만, 애플의 미래 전망은 차가운 것들이 많았다. 불세출의 창조혁신 경영 아이콘인 잡스의 부재가 큰 것일까. 청바지와 검은 폴라티 옷차림에 ‘하나 더’(One more thing)’와 ‘와우’(Wow)를 외치던 애플의 화신이자 카리스마의 CEO. 그가 사라진 1년은 애플의 미래를 느낌표(!)에서 물음표(?)로 바꿔놨다. 후계자 팀 쿡이 애플의 외형을 1년 전보다 높여 놓은 것에 비해 냉정하리만큼 인색한 평가가 적잖다.

전문가들은 애플을 놓고 일단은 ‘순항’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미래 이야기가 나오면 ‘글쎄’라고 머리를 긁적인다. IT 전문 매체인 시넷은 ‘잡스가 없으니 열광할 일도 없다(No Steve Jobs, no sizzle)’고 적었다. 최근 선보인 아이폰5의 지도 오류로 고객 불만이 들끓고 주가가 급락하자 애플은 팀 쿡의 공개 사과문까지 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스트리트닷컴(TheStreet.com) 로코 펜돌라 애널리스트의 칼럼을 통해 ‘ 잡스가 살아 있다면 쿡은 사과문이 아니라 사표를 써야 했다”고 꼬집었다.

◆팀 쿡(Timothy Cook, 1960∼ ) 지난 한 해 애플은 잡스의 탄탄한 유산과 혁신 유전자(DNA)의 관성에 힘입어 성장세가 이어졌다. 조지 콜로니 포레스터리서치 회장은 “애플의 고공비행은 2~4년밖에 못 갈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새로운 리더가 출현해 잡스식 혁신을 이어 가지 못하면 애플은 ‘위대한(great)’ 회사가 아니라 ‘좋은(good)’ 회사에 머물 것”이라고 경고했다. 쿡 CEO의 리더십을 잡스의 유훈(遺訓) 경영 정도로 보기도 한다. 백기복 국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북한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의 유훈 통치를 하듯 애플은 잡스의 유훈 경영이 지배하고 있다.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낸 CEO들이 그랬듯 애플도 2인자를 키우지 못했다”고 평했다. 월트디즈니와 소니도 카리스마 넘치는 창업자 CEO가 자리를 비운 뒤 사세가 급격히 기운 경험이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종근 책임연구원은 “애플처럼 승승장구하다 창업자의 은퇴나 사망으로 기업이 흔들린 사례는 많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창조적 CEO 리더십 점수를 매기면 잡스는 100점 만점에 99점, 쿡은 80점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본다. 미 오번대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듀크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팀 쿡은 컴팩 부사장을 지내다 1998년 애플 수석 부사장으로 옮겼다.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 관리자 스타일로 ‘포스트 잡스(Post Jobs)’의 충분한 재목이 못 된다는 것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은 “잡스는 추종자보다 매니어를, 고객보다 팬을 만들며 세상에 족적을 남긴 ‘영감적 리더’의 표상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전문가로서의 쿡은 뛰어날지 몰라도 열정의 전염성이나 설득력, 영감 부여 능력 등 창조적인 CEO 리더십 점수로 보면 잡스에 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애플의 새 스마트폰 아이폰5(왼쪽)와 전작 아이폰4S

물론 실적 수치로 본 지난 1년의 애플은 파죽지세였다. 지난해 말부터 가파르게 상승한 애플 주가는 지난달 19일엔 사상 최고치인 702.10달러까지 치솟았다. 아이폰4S·뉴아이패드·아이폰5 등 신제품도 연달아 히트했다. 지난달 말 선보인 아이폰5는 지도 오류 파동에도 불구하고 출시 사흘 만에 500만 대 넘게 팔렸다.
하지만 이러한 호조가 지속될지 불투명하다. 스마트폰 시장이 점차 포화 상태에 이르고 애플의 혁신도 한계에 허덕이는 기색이다. 바짝 뒤쫓아오는 삼성전자와의 특허소송,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격화, 구글 등 글로벌 IT 강자들의 견제…. 애플에는 또 다른 혁신 승부수가 필요한 때다.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이 최근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astounding)’ 카테고리(신개념 제품)를 내놓은 적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iTV-완벽한 소통의 차세대 인터넷 TV쿡 리더십의 시금석은 iTV다. 잡스는 스마트폰으로 통신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iTV로 디지털 가전 시장을 석권하려는 꿈을 꾸었다. 그의 사망으로 전자 왕국의 꿈은 미완에 그쳤다.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 전기에서 ‘모든 전자기기와 장애 없이 소통되는 완벽한 TV를 조각했다’는 잡스의 말을 전했다. 임정욱 라이코스 전 대표는 “잡스의 지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iTV의 성패가 애플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엔 잡스의 탁월한 DNA를 발판으로 후계자 쿡의 독자 리더십이 모습을 드러내는 첫해로 기대된다. iTV도 출시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종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내년부터는 쿡 CEO의 리더십이 진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iTV로 또 한번 애플의 도약이 실현되면 이르면 내년, 늦어도 2015년에 기업가치 1조 달러 달성도 못할 건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암운이 쉬 걷힐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경제위기 돌파 비결은 뭘까. 잡스가 2005년 미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던진 명구 ‘늘 갈구하고 무모하리만치 도전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백기복 교수는 “잡스의 위대함은 그의 창조물에 더해 리더십과 철학에 있다. 그런 감성과 미래를 보는 혜안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CEO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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