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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하고 친정으로 떠난 며느리 빈자리에 쌩~하고 친정으로 달려온 딸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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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은 하늘에 둥실둥실.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은 둥근 밥상머리에 오글오글. 누구는 이런 명절이 자주자주 있었음 하고. 누구는 이런 명절이 일 년에 두 번이라 다행이다 하고.

 추석 전전날, 집 근처 마켓에 갔다. 추석 장을 볼 때 빼먹은 몇 가지를 사서 나오려는데 동네할머니 한 분이 차 좀 같이 타자며 반기신다. 차 트렁크 가득 할머님 장바구니를 싣고 가면서. ‘아들 내외가 자주 못 와서 명절 때만 되면 보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친다는 얘기. 옛날에는 몇 밤씩 자고 가더니만 작년부터는 다음 날 처갓집 들른다며 하룻밤 자고는 새벽같이 쌩~하고 떠나버려서 무척 섭섭하다는 얘기’ 등을 죽 늘어놓으신다. 트렁크 가득 채운 찬거리들을 보니 서운하시기도 하겠다 싶었다.

 며느리를 딸과 똑같이 생각한다는, 또 그러리라 믿어지는 맘이 따뜻한 어떤 아주머니가 있다. 일 다니는 며느리 대신 자주 집에 들러서 어린 손자도 봐주고 저녁밥도 지어놓고 하시던 어느 날. 손자 보랴 밥 하랴 아무리 힘들어도, 둘이 고생하는 게 기특하여 며느리가 좋아하는 동태찌개를 해놓고 기다리는데 퇴근해서 돌아온 며느리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하는 말. "어머님, 오늘 메뉴는 뭐예요?” 하더란다. 그래서 "넌 참 뻔뻔도 하다” 하고 쏘아붙이고 나왔다며 속상해하던데.

 비슷한 경험, 나도 했다. 딸의 퇴근시간 맞춰 저녁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는 내게, 딸이 소파에 앉으며 "엄마, 메뉴는 뭐야?” 했고 내 대답은 "우리 딸 좋아하는 녹두부침하고 조개된장찌개 했지. 배고프겠다. 빨리 씻고 와”였다. 달라도 이렇게 많이 다른 게 딸과 며느리다.

 “친정엄마 생각에 1분 만에 눈물 나고 시어머니 생각에 1분 만에 짜증나고. 힘든 날 전화 한 통 없는 친정엄마 서운하고. 힘든 날 매일 전화하는 시어머니 눈치도 없고. ‘아이고 허리야’ 한마디에 친정엄마는 ‘그러다가 골병 든다. 병원 가서 침 좀 맞자’ 하고 시어머니는 ‘무슨 젊은 애가 벌써부터 허리병이냐’ 하고. 시집간 딸 생각하면 짠해지는 시어머니도 시집온 며느리 생각하면 불만스러워지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은 글이다. 웃어넘기기엔 너무 씁쓸하다. 나를 낳은 친정엄마와 남편을 낳은 시어머니. 같을 수는 없다. 배 속에서 나온 딸과 새로 맞이한 며느리도 같을 수는 없다.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치를 낮추고 서로 간에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같아지지 않을까.

 여러 시민단체나 여성가족부에서, ‘평등명절 4행시 짓기’ 같은 이벤트를 열기도 하며 애를 쓴 덕분에, 명절문화가 모두가 행복한 명절로 조금씩 진화해 가고 있다는데.

 차례를 치르자마자 쌩~하고 친정으로 떠난 며느리를 야속해하지 말자. 그 빈자리를 쌩~하고 달려온 딸이 채웠을 터이니 말이다.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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