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험한 관계’ 장동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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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바람둥이를 연기한 장동건은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다는 말로 아내 고소영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0세를 뜻하는 불혹(不惑).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중심을 잡는 나이다.

 하지만 배우 장동건(40)은 불혹의 나이에 변해가고 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낯 간지러운 사랑을 하는 40대 남성 도진을 연기하더니, 중국 영화 ‘위험한 관계’(허진호 감독, 11일 국내 개봉)에서는 1930년대 중국 상하이 화류계를 주름잡는 바람둥이로 변신했다. 어떤 여자든 홀려버리는 그의 눈에선 이글거리는 분노(‘태극기 휘날리며’ ‘태풍’)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영화는 18세기 프랑스 작가 라클로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국내에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동건은 사교계의 여왕 모지에위(장바이쯔), 정숙한 여인 뚜펀위(장쯔이)와 삼각관계에 빠지는 플레이보이 셰이판을 연기했다. 2일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촬영전 허 감독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동건씨나 나나 대표작을 바꿀 때가 됐다’고 하더라. 허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나도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에만 머물 수 없었다. 영화는 허 감독의 변신이 돋보인다. 나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감정의 줄타기를 하는 게 힘들었다. ”

 -중국 영화라서 표현상 제약은 없었나.

 “칸 영화제에서 선보였을 때는 파국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개봉작은 긍정적 여운을 남긴다.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라는 중국영화의 작법을 따랐다.”

 -중국어 대사가 어렵진 않았나.

 “더빙을 하자는 권유에 따라 한두 장면을 한국어로 했더니 어색하더라. 그래서 끝까지 중국어로 하자고 했다. 대사를 밤새 외웠다.”

 -‘신사의 품격’도 그렇고, 역할이 가벼워졌다.

 “큰 감정을 표현하는 대작영화를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졌다. 작지만 섬세한 캐릭터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유쾌한 역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때 ‘위험한 관계’와 ‘신사의 품격’을 만났다. ‘신사의 품격’ 하면서 내가 원하는 캐릭터를 대중도 좋아해준다는 걸 느꼈다. 갇혀있던 곳을 뚫고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대작은 피하고 싶다. 흥행보다 캐릭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기 뿐 아니라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젊었을 때는 자신감도 없었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연기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늘 다음 작품이 걱정됐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할 것 같아 작품을 택한 경우도 많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버릴 건 버리자고 결심하니 홀가분해지더라. 지금의 마인드로 20·30대로 돌아가면 진짜 바람둥이가 될 것 같다.”(웃음)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도 아저씨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더라.

 “외모로 지적당한 건 처음이다. ‘내 외모가 어디 가겠어’라고 생각했는데 1·2회 봤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나이들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을 대중에게 일찍 노출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적은 관객이라도 그들의 인생을 바꿔주고, 영원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를 하고 싶다. 홍상수 감독과도 일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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