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굴비에요?" 주인은 '목포' 직원은 '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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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국산’ 표시를 해 두고 본다. 어차피 눈으로 구별하기도 힘든 데다 일일이 단속하지 못할 거란 배짱이다. JTBC ‘미각스캔들’ 제작진이 추석을 앞두고 일부 재래시장과 노점상의 농수산물 원산지 표기 실태를 취재한 결과다. 차례상에만큼은 국산을 올리겠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는 행태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각스캔들’ 제작진은 제수용품 중 고사리와 굴비의 원산지 둔갑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방송은 추석인 30일 밤 10시50분 JTBC에서 나간다.

‘북한산’ 고사리 대부분이 중국산

 말린 고사리는 전문가도 육안으로 원산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식재료다. 대체로 알려진 감별법. 국산 고사리는 색깔이 연한 갈색이고 독특한 향기가 강하지만 중국산 고사리는 진한 갈색에 향이 약하다. 또 물에 담갔을 때 부푸는 속도가 국산은 빠르고, 중국산은 느리다.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큰 감별법이다. ‘미각스캔들’ 제작진이 지난 25일 찾아간 서울 A재래시장에서는 ‘국산’ 표시가 된 고사리가 600g에 3000원에서 1만원까지 다양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미각스캔들’ 윤현 PD는 “이렇게 많이 생산되나 싶을 정도로 시장에 국산 고사리가 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찾아간 전남 고흥 고사리 재배농가의 설명은 달랐다. 재배농민 이재운(60)씨는 “국산은 고사리 소비량의 10%에도 못 미칠 것”이라며 “수입물량이 너무 많아 국내 농가들이 제값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는 ‘북한산’이라고 표시한 고사리도 많았다. 북한산 고사리는 중국산보다 600g에 1000∼2000원 정도씩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상인들은 “손님들이 중국산보다 북한산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산 농산물은 2010년 5월 이후 수입이 금지된 상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남북 간 교역을 전면 금지한 5·24 대북조치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산’ 고사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서울 B시장에서 북한산 고사리를 팔고 있던 한 상인은 “그(5·24 대북조치) 이전에 구입해 온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옆 가게 점원은 고객으로 위장한 제작진에게 “그거 다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부르는 게 원산지? … 같은 가게서도 다른 말

원산지를 ‘영광 법성포’로 표기한 굴비를 8마리 3만원에 팔고 있는 트럭 앞에 손님들이 모여 있다.

 굴비 역시 원산지 구별이 쉽지 않은 품목이다. 배 부분이 노란 게 국산이라는 것 정도가 구별법이다. 소비자들로선 상인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서울 A시장의 한 가게에선 판매원에 따라 같은 굴비의 원산지가 바뀌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어디 거냐’란 제작진의 질문에 주인은 “목포산”이라 대답했고, 직원은 “제주도산”이라고 답한 것이다.

또 서울 이촌동 길거리 트럭에서 8마리 3만원에 팔고 있는 굴비도 ‘영광 법성포’라고 원산지 표기를 했다. 포장에도 ‘영광굴비 특품사업단 굴비’라는 표기가 돼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이 영광굴비 특품사업단에 확인한 결과 “바코드가 없으면 가짜다. 가짜가 나돌지만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미각스캔들’ 윤 PD는 “중국산 조기를 법성포에서 가공한 뒤 영광 법성포 굴비로 판매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보다 확실하게 원산지 표기 관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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