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조선시대 임산부 미라 사망 원인은 민물가재 기생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기생충은 고고학에서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다. 옛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아보는 단서가 된다.

 2009년 5월 경남 하동에서 발견된 400여 년 전 조선시대 임산부 미라의 사망 원인은 기생충 때문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팀은 “조선시대 임산부 미라의 폐와 간 등에서 폐흡충알 100여 개를 발견했다”며 “민물가재를 갈아 만든 생즙을 다량 복용해 폐흡충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26일 밝혔다.

 폐흡충은 민물게·우렁·가재 등을 날 것으로 먹을 때 감염되는 기생충이다. 폐디스토마라고도 한다. 감염 초기에 복통·흉통이 생기고 심해지면 피가 섞인 가래와 기침이 나온다. 뇌로 전이되면 심한 두통과 반신불수·마비 등을 일으킨다. 현재는 치료제가 개발돼 1주일 정도면 완치된다고 한다.

 서 교수팀은 2009년 6월 미라의 기생충 연구에 착수했다. 장기 조직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DNA를 분석하면서 폐흡충알의 조직과 형태를 확인했다. 서울대 의대 고병리연구실 신동훈 교수와 단국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김명주 교수가 함께 참여했다.

 서 교수는 “여인의 몸이 가래 조차 스스로 뱉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다”며 “보통 성충 5~10개가 몸 안에서 활동하면 증상이 나타나는데, 100여 개가 기생할 정도면 많은 양의 생가재즙을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는 또 “폐흡충 감염이 곧 사망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이 경우엔 직접적인 사망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감염이 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라는 금난면 진정리에 있는 진양 정씨 문중 묘역 일부가 도로개설 구간에 포함돼 묘를 이장하던 중 발견됐다. 미라의 주인공은 조선중기 인물 정희현(鄭希玄·1601∼1650)의 두 번째 부인 온양 정씨로 밝혀졌다.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발견 당시엔 이 부인이 아이를 낳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임신 적령기인 20~30대인데다 어린아이 뼛조각이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한지로 만든 짚신인 지혜(紙鞋)를 신었고 머리엔 가발의 일종인 ‘가체’를 두른 상태였다.

 서 교수는 “미라의 사인을 비롯해 조선시대 생활상을 밝히는 보고서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