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는 CEO 몸값…'주주 알권리' 공개 여론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월 25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너럴일렉트릭(GE)주주총회에서 최고경영자(CEO)인 잭 웰치 회장의 지난해 연봉과 보너스,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 공개됐다.

그는 1천6백70만달러(약 2백10억원)의 연봉.보너스와 1999년의 5배인 3백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GE의 경영실적이 뛰어났으므로 주주들과 미국 언론은 조용했다.

그러나 델 컴퓨터의 CEO 마이클 델이 3억5천3백만주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3천8백만주의 스톡옵션을 추가로 받고, 7억주의 자사주를 갖고 있는 오라클의 CEO 래리 앨리슨이 2천만주의 스톡옵션을 다시 챙겼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경제전문지 포천은 "미국 CEO들은 날강도" 라고 비난했다.

주가가 폭락했는데도 CEO들이 터무니 없는 낙관론을 내세우며 몸값 올리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욕타임스도 "CEO는 엉터리 시골 약장수들" 이라고 보도했다.

◇ 연봉 공개를 통한 감시=미국에는 거액의 보수를 받는 CEO들이 많다.

지난해 2백개 주요 기업의 CEO들은 연봉.주식.스톡옵션 등을 합쳐 1인당 평균 2천만달러를 번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기업들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자체 보상위원회(Compensation Committe)에서 임원들의 보수를 결정한다.

그리고 CEO를 포함, 회사 안에서 급여를 많이 받는 다섯명까지의 보수를 공개한다. 나머지 임원들의 급여는 총액으로 공개된다.

이 때 기업실적에 비해 CEO에 대한 보상이 적정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사 주식수익률, 경쟁사 주식수익률, 대표적인 주가지수 수익률의 5년간 실적을 그래프로 제시한다.

경영실적이 연봉이나 스톡옵션에 턱없이 못미치면 주주들과 언론이 가만 있지 않는다.

따라서 실적이 나쁜 CEO들은 스스로 연봉을 깎거나 사표를 쓸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주가 하락으로 곤경에 빠진 시스코시스템스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자진 삭감했다.

온라인 증권사 찰스 슈왑의 CEO 찰스 슈왑도 연봉 중 절반을 받지 않기로 했다. AT&T의 CEO 마이클 암스트롱은 전년 대비 25%에 불과한 65만달러의 보너스에 만족해야 했다.

아예 쫓겨나는 CEO도 있다. 통신장비업체인 캐나다 노텔의 CEO 존 로스는 자신의 후계자인 클레런스 챈드란과 함께 내년 4월까지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 찬반 논란 속 공개 바람 솔솔=국내 CEO의 연봉은 공개되지 않는다.

전체 임원들의 급여가 총액으로 주총에서 공개되고 사업보고서에는 총급여를 임원 수로 나눈 평균 급여만 나와 있다.

주주들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CEO의 개인 연봉을 모르는 것이다.

얼마전 삼성전자의 주식 10% 정도를 갖고 있는 최대 외국투자가인 미국 C사의 대표가 서울을 은밀히 방문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브리핑을 받은 뒤 "경영 실적에 만족한다" 면서 임원의 보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삼성측이 "국내 경쟁기업보다 잘 대우하고 있다" 고 하자 그는 "경영 성과에 걸맞게 CEO를 비롯한 핵심 경영진의 연봉을 훨씬 올리고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黃위원도 "일정 한도 이상, 예컨대 3억원 이상 받는 CEO의 연봉은 공개토록 해야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그는 "주주들은 CEO가 기업 성과에 걸맞은 월급을 받아가느냐를 알 권리가 있다" 며 "증권거래법이나 회계규정을 개정해 공개하거나 수시로 공시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현재 금감원은 내부적으로 CEO의 연봉 공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한 코스닥 기업의 CEO는 "국내에 전문경영인은 거의 없다. 한사람이 대주주이자 대표이자 사장이자 CEO다.

대기업 CEO는 재벌의 재산관리인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연봉 공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고 반문했다.

기업의 소유와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숭실대 장범식 교수도 "우리나라에 연봉제가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일부 외국계 은행들을 제외하고는 CEO의 연봉이 많지 않아 연봉 공개는 시기상조" 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黃위원은 "최근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CEO의 연봉이 크게 오르는 추세이고 경영 투명성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며 "연봉이 공개되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접대비도 많이 줄어들 것" 이라고 강조했다.

정선구 기자 su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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