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 온 하멜,13년간 무엇하며 살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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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54년째 현역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김영희(76·사진)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가 『소설 하멜』(중앙북스)을 펴냈다. 2003년 단편소설 ‘평화의 새벽’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몇 편의 단편을 써냈지만 장편소설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문기자와 소설가를 병행한 동기에 대해 그는 “사실을 추구하는 일이 기자의 본업이지만 불쑥불쑥 사실의 울타리를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소설을 쓰게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1653년 효종 때 조선 땅에 표착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1692)과 그의 동료들이 13년간 조선에 체류했던 역사를 재구성했다. 작가의 눈은 17세기 하멜의 고향 암스테르담과 하멜이 머물던 조선의 제주·강진·여수, 하멜이 탈출한 일본의 나가사키를 수시로 넘나든다.

 가상의 인물과 상상력을 동원한 역사소설이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우리 역사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과 국제문제 전문가로서의 안목이 곳곳에 녹아 있다. 김 대기자가 가장 안타까워한 대목은 지도자들의 국제감각.

 “17세기 제주 해안에 표착한 36명의 네덜란드 선원들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습니다. 저마다 한 가지씩 전문 기술을 갖춘 그들은 당시 국력 증강에 얼마든지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제대로 활용을 못했어요. 임금을 호위하는 장식품으로 동원되거나, 호기심 많은 사대부 집으로 불려가 춤추고 노래 부르곤 했는데, 국가적인 기회상실의 전형입니다.”

 1666년 조선을 탈출한 네덜란드 선원들이 나가사키로 가는 대목이 비교된다. 일본은 나가사키에 네덜란드 상관(商館)을 열어주고 무역을 하면서 세계정세를 읽어내고 있었다. “조선 조정이 하멜의 표착을 계기로 넓은 세상에 눈 뜨고 미래를 준비했다면 그 후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겁니다. 한국, 일본의 운명이 17세기 나가사키에서 갈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 하멜』을 완성하는 데는 8년이 걸렸다고 한다. 8년이란 긴 시간에 놀라움을 표시하자 그는 “유럽과 아시아에 있는 하멜의 흔적과 자료를 추적해야 하고 또 주로 주말을 활용해 글을 쓰다보니 그런 세월이 흘렀는데, 쓰는 도중에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화하는 좋은 점도 있었다”며 웃었다.

 “뭐든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도해보길 우리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저자는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다음 작품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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