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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무조건 팔고 보자’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홈쇼핑이란 말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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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강일구]

양평도 시골인지라 밤이 길다. 그 긴긴 밤에 난 쇼핑을 한다. 쇼핑 호스트는 ‘폭발적인 주문… 곧 매진…’ 주술을 걸고 난 정신없이 주문을 건다.

 냉동 칸에는 오리가 네 마리, 모시떡이 백 개, 고등어 50마리가 차곡차곡 누워 있다. 덕분에 먹거리 사러 나갈 일도 없고 가득 찬 냉장고는 듬직하다. 값도 저렴하고 양도 푸짐해서 여기저기 나눠 먹기도 좋다.

 어느 날. 커다란 전기그릴에서 고기 구워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남편을 쳐다봤다. 끄떡끄떡.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전기그릴은 숯불 피우지 않고 손님을 접대할 때 좋을 것 같고 ‘현재 백화점에서 팔고 있다는 캐리어 가방과 전기오븐’은 덤이란다. 날 유혹한 결정적인 말은 ‘80년 전통 독일 명품 브랜드’.

 독일 명품이라면 ‘휘슬러나 쌍둥이칼 수준?’ 80년이나 됐으면 어쩜 더 좋을지도. 값도 싸다. 그런데 주문해서 받아보니 겉모양이 영 아니다. 그래도 독일 명품이라지 않은가. 그릴을 바닥에 세워놓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릴이 옆으로 쓰러져서 그릴 바닥 플라스틱 부분은 깨지고 손잡인지 뭔지는 휘어져 버렸다.

 그때서야 꼼꼼히 들여다봤다. 싸구려 장난감도 아니고 만든 게 엉망이다. 80년 된 독일 명품이라더니? 명품 몸매 뭐 그런 명품? 우롱당한 기분이다.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박스를 버려 반품이 곤란하다더니, 독일 명품 브랜드 맞느냐는 물음에 다음날 환불도 해주고 물건도 가져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릴 뒷면에 적힌 번호로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80년 독일 명품 정말 맞느냐, 납득할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계약서 있다. 실장이 전화하겠다’ 해놓고선 10일이 지나도 깜깜무소식. X홈쇼핑에 따졌다. ‘우린 X란 이름만 믿고 광고 그대로 믿었는데 무슨 근거로 80년 독일 명품이란 거냐. 당신들 명품 기준은 대체 뭐냐. 근거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근거는 있지만 소비자에게 보여줄 의무는 없다’고 하기에 ‘그럼 누가 요청하면 증거를 보여주겠느냐?’고 물었다. 알아보고 다시 전화한다더니 일주일째 대답도 없다.

 홈쇼핑. 나같이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박스 포장해서 택배 불러 반품하기 귀찮아 그냥 투덜대며 쓸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단 무조건 팔고 보자’가 판매 전략인가? 그 덕에 홈쇼핑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작은 것 하나라도 어디 신뢰를 저버리기 시작해 봐라.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혹시 냉장고 속 무항생제 오리, 고등어가 다 중국산? 혹시 다른 명품은? 아님 ‘방송 30분 만에 절판’ ‘전화 대기자 수가 300명’ 이런 것 몽땅 거짓말? 정말 헷갈린다.

 개그 유행어를 빌려 한마디 하겠다. ‘홈쇼핑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홈쇼핑이란 말입니까’.

글=엄을순 객원 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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