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집단소송제 비슷한 것 뭐가 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84년 서울에 큰 비가 내렸어요. 유수지 수문이 망가져 망원동 일대가 물에 잠겼답니다. 피해를 본 주민 1만여가구는 수문을 관리하는 서울시에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어요. 재판이 7년이나 걸렸는데 주민들은 서울시로부터 가구당 10만~1백만원의 위자료를 받았어요. 이때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냈다고 해서 '집단소송' 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군인들 가운데 당시 울창한 밀림의 잎을 제거하려고 사용한 고엽제 때문에 후유증을 앓는 분들이 많아요. 이들 중 일부는 고엽제를 만든 회사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어요. 재판에 참여한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수천명이지만, 실제로 법정에 나가 재판하는 사람은 10명입니다.

이처럼 같은 피해를 본 이들이 대표를 뽑아 소송을 맡기는 것을 선정당사자 제도라고 해요.

둘 다 재판을 통해 집단으로 피해를 구제받겠다는 점에선 집단소송제와 비슷하지요.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 집단소송은 아니랍니다.

집단소송은 함께 재판을 걸지 않더라도 같은 피해를 본 사람이면 모두 그 판결의 효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망원동이나 고엽제 소송은 재판에 참여한 사람한테만 효력이 미칩니다. 주주 대표소송이란 제도도 있어요.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소송을 거는 것이죠. 97년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이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등을 상대로 건 재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당시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이 부실 기업에 마구 대출해 은행이 부실해졌고 주가도 떨어졌다며 4백억원을 배상하라며 재판을 걸었지요.

주주들이 제일은행을 대신해 소송을 낸 것입니다. 이 경우 재판에서 이겨 손해배상을 받아도 그 돈은 모두 회사로 들어가고 재판 당사자인 주주 입장에선 당장 돈을 손에 쥐진 못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배상금을 받으면 경영이 좋아지고 이로 인해 주가가 오르는 간접 이익을 보게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한 일괄피해구제 제도는 재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당한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받도록 한다는 점에서 집단소송의 전 단계로 볼 수 있지요.

공정위가 일괄피해구제 대상으로 선정하고, 시정조치를 내리면 다른 피해자도 이 결정을 근거로 소비자보호원 등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답니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