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42세 노장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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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다테

30대 초반이면 은퇴를 생각하는 테니스계에 40대 선수는 ‘희귀종’이다. 그 희귀종이 한국을 방문했다. 현역 최고령 여자 테니스 선수인 다테 기미코 크룸(42·일본)은 1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KDB코리아오픈 테니스대회 1회전에 출전해 자신보다 18살 어린 막달레나 리바리코바(슬로바키아·세계랭킹 54위)와 맞섰다. 다테는 0-2(4-6, 3-6)로 졌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사상 최초의 40대 단식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다테는 이미 신기록 수립에 근접한 적이 있다. 2009년 한국에서 열린 한솔코리아오픈(KDB코리아오픈 전신)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당시 나이 만 39세로, 1983년 빌리 진 킹(미국)이 세운 39세 7개월 23일에 이어 두 번째 최고령 우승이었다.

 1995년 세계랭킹 4위까지 올랐던 다테는 전형적인 동양인 체형이다. 서양 선수에 비해 왜소한 체격(1m63㎝·53㎏)이지만 끈기와 기술로 상대를 제압한다. 현재 세계랭킹 108위인 다테의 플레이 앞에서는 딸 뻘인 20대 초반 선수들도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테는 “체력을 덜 소모하면서 점수를 딸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가 요즘 체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기체조’다. 일본에 기체조 선생님까지 두고 열성적으로 배우고 있다.

 다테의 롱런 비결에는 남편의 외조도 한몫했다. 다테는 1996년 은퇴 후 카레이서인 미하엘 크룸(42·독일)과 결혼했다. 크룸도 현역 카레이서로 일본 자동차 경주대회인 수퍼 GT에서 닛산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테는 “테니스를 그만둔 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테니스를 좋아하는 남편이 ‘즐기면서 해보라’고 재차 권유했다”고 복귀 과정을 설명했다. 크룸은 전 세계를 도는 투어로 1년에 10개월은 집을 떠나 있는 다테를 응원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가는 애처가다.

 남편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다테는 “언제 은퇴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계속 테니스를 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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