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30대그룹제' 폐지론 힘 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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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기업집단(30대 그룹) 지정 문제를 놓고 재계와 정부가 벌이던 줄다리기가 소강상태로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풀거나 개선해 달라" 며 속앓이를 하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를 제외한 다른 경제부처는 재계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검토해야 한다' 는 입장이다. 30대 그룹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채무보증 금지는 물론 20개가 넘는 법으로 은행 돈줄을 죄고 신사업 진출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다만 재계의 요구대로 30대 그룹 지정제도 자체를 당장 폐지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5.31 기업규제 완화' 가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 문제를 거론하기 부담스럽고, 기업의 투명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전제돼야 정부로서도 화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규제〓30대 그룹 지정제도는 1987년에 만들어졌다. 제도를 만들 당시 한국은 금융.외환시장 개방이 거의 안된 상태였다. 대기업들은 시장개방이 안된 상태에서 은행돈을 독차지하며 기업을 마음껏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선 30대 그룹을 정해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돈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막자는 논리가 먹혔다.

90년대 들어 시장이 개방되고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의 자리를 넘보게 되면서 30대 그룹 지정제도는 기업들의 문어발 확장을 막기보다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강한 규제' 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98년에 부도난 거평그룹은 30대 그룹 지정제도의 허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91년 종업원이 4백88명이었던 거평은 계열사끼리 서로 빚보증을 서는 방법으로 계열사를 22개로 늘려 생긴 지 6년 만인 97년 30대 그룹에 편입됐다. 30대 그룹 편입과 동시에 채무보증을 못하고 은행들이 돈줄을 죄자 98년에 부도가 났다.

◇ 대안을 찾자〓기업들이 투명경영을 확립하고 은행을 중심으로 한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면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기업이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지와 빚을 낼지 말지는 기업 스스로 결정할 일" 이라고 전제한 뒤 "그 일의 잘잘못은 시장이 평가하도록 하고 정부는 부당내부거래 등을 단속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송상훈.이상렬 기자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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