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이제부터는 서부(西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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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거를 알려면 시안(西安)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옛 이름이 창안(長安)인 시안은 중국의 13개 왕조에 걸쳐 1100여년의 “천년제도(千年帝都)“로 모든 수도의 대명사였다. 진시황의 왕릉, 병마용, 양귀비의 화청지등 역대 왕조의 유적지가 늘여있다.

일찍이 중국과 인연이 많았던 우리나라와도 관계가 깊다. 7세기 후반 고구려가 망하자 고구려 유민이 집단 이주 당해 살던 고려곡(高麗曲)이 시안에 있다. 당(唐)의 서역정벌에 큰 공을 세운 유명한 고선지(高仙芝)장군도 이곳 출신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당의 유명한 고찰에는 신라 스님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안의 흥교사에는 화엄경 번역에 힘쓴 원측스님의 유골을 모신 원측탑이 있고 지상사는 의상대사가 8년간 수행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대흥선사에는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헤초 스님이 활동한 흔적이 남아 있다.

최근 시안을 다녀왔다. 이제 시안은 중국의 과거가 아니고 중국의 미래로 보였다. 시안에서 이제 역사는 잊어야 할 것 같다. 시안의 까오신취(高新區)라는 하이테크 신도시에는 3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시안은 중국의 서부 대개발의 전략적 요충도시로 전기 및 용수가 풍부하고 글로발 IT기업 및 항공 산업의 생산 연구 거점이 모여 있다. 그리고 산시성(陝西省)에만 112개의 대학에 133만의 대학생을 가진 고급인력이 풍부한 곳이다.

한국 광물자원공사가 희토류 등 광물자원에 관심을 갖고 2003년부터 진출해 있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을 착공하면서 한국기업의 본격적인 중국 서부시대를 열고 있다. 삼성전자의 70억불 규모의 통 큰 투자는 우리 기업의 역대 해외투자액 뿐만이 아니라 중국내 외자기업 투자로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삼성전자를 통해 200여개의 협력업체가 동반 진출하게 되며 시안지역에 일자리 1만3000여개가 창출된다고 한다.

시안은 지리적으로 중국 동서남북의 한가운데이다. 시안을 “중국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내륙의 중심으로 연해지역과 차별화를 위해 저비용(低成本) 고효율(高效率)의 온갖 인프라를 깔아 놓은 시안은 “이제부터는 서부야” 하고 한국 기업에게 손짓하고 있다.

시안은 명(明)을 세운 주원장이 천하를 통일하면서 서쪽의 평안과 발전을 염원하여 붙인 이름이다. 지난 20년간 중국 연해지역에서 가공무역 중심의 제조업에 성공한 한국기업이 향후 중국내수와 글로발 수요에 대비한 첨단산업 중심으로 대변신을 도모할 경우 시안은 우리에게 이름 그대로 “서안(西安)”이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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