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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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 속에 내처져 있지만 정작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쉽질 않다. 시점도 불확실한 탄생, 그리고 그 성장의 역사, 나아가 왜 자본주의가 '근대성' 과 동일어처럼 쓰여지는지 실은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는 이같은 물음에 답하려는 책이다.

대만계 중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역사학자로 활동하는 저자 황런위(黃仁宇) 는 사회주의와 대척점에 서있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자본주의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구체적인 역사 상황 속에서 제도와 사람의 의식, 경제적 환경과 함께 생장(生長) 해 온 자본주의를 기술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논급할 때 항상 첨예하게 떠오르는 문제인 '중국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했었는가' 역시 이 책이 정면으로 다루는 주제다.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이제껏 서양 지식사에서 빠져 있음을 반복해 지적한다.

대개 19세기 중엽에서야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이 또렷해지기 시작했고 이의 병리를 집중적으로 지적한 칼 마르크스조차도 자본주의 개념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실체는 뭘까.

저자는 우선 기술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특징을 자금의 광범위한 유통, 비(非) 인격적인 경영방식, 기술적인 지지요소에 대한 공동 관리로 꼽는다.

자본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 사회가 수량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하며 법제가 갖춰져 사회 구성원간의 신용이 쌓이고 이를 토대로 상업활동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이같은 여러가지 요소때문에 자본주의가 역사 속의 어느 시스템보다 더 '근대적' 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위와 같은 설명은 저자가 중세 이후 베네치아와 네덜란드.미국.영국.프랑스에서 뿌리 내리며 거대한 '근대성' 을 확보한 자본주의 발달과정을 천착해 얻은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다소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각 국가의 자본주의 성장사를 촘촘하게 늘어놨다.

역사학자로서 제도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각 시대 상황을 헤집으며 쌓은 연구성과를 발판으로 저자는 자본주의의 시발점을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의식에서 찾았던 막스 베버, 유대교가 그 출발점이라고 설파했던 좀바르트의 결론을 통박한다.

이들은 경제사적 측면을 무시하고 인간의 심성에만 의지한 '유심론적' 분석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이 명.청시대에 일찍이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다는 마오쩌둥(毛澤東) 의 '자본주의 맹아론' 도 비판한다.

중국의 명.청대에 은(銀) 을 본위로 한 화폐유통이 활발했다는 점에 대해서 저자는 이것이 상품경제에 불과할 뿐 법률과 신용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적 현상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자리잡기에는 관료제도와 중앙집권 체제, 법을 대신한 도덕주의가 너무나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은 자본주의에 대해 저자는 다소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또 근대성과 함께 법치를 자본주의의 근간으로 내세우면서 다각도로 평가해야 할 최근 중국의 자본주의적 실험을 통렬하게 공격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편향이 학문적인 긴장감을 다소 떨어뜨리는 부분이다. 원저가 나온 때가 1992년이라 그런지 다국적 기업 문제와 국제적인 투기자본으로 대표되는 요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루지 못한 점도 이 노작(勞作) 에서 보여지는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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