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본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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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의 저자이자 덩샤오핑(鄧小平) 의 막내딸인 덩룽(鄧榕.51) 은 아버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1993년에 펴낸 『나의 아버지 등소평』(삼문) 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의 삶과 사상을 전기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바 있는 그녀가 이번엔 아버지가 문화혁명(1966~1976) 기간에 겪은 핍박과, 그 고통을 이겨내고 복권되는 과정을 한편의 실명 소설처럼 다시 그려냈다.

96년 타계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도 듬뿍 묻어나지만, 10대 시절 자신이 직접 겪은 억울한 경험을 쏟아놓은 이 책은 문화혁명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된 집단적 광기에 대한 고발이며 쉽게 잊히는 역사에 대한 환기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된 신간의 원제목은 『나의 부친 덩샤오핑 : 문화혁명의 세월』이다.

일단 이 책은 덩샤오핑 일가의 수난을 중심으로 문화혁명을 조명했기에 어쩔 수 없이 덩샤오핑의 정치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66년 문화혁명이 발발했던 당시 당총서기였으며 부총리였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후계자격이었던 류사오치와 함께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수정주의자(走資派) ' 로 몰려 숙청당한다.

덩샤오핑은 그의 부인과 함께 트랙터 수리제조 공장에 배치돼 3년간의 '사상개조 단련' 을 겪는 등 6년간 처절한 수모를 받은 후 72년 저우언라이 총리의 추천으로 복직된다.

책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75년 문화혁명을 인정하는 결의대회를 주관하라는 마오쩌둥의 요구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다 다시 미움을 사고, 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기 직전엔 천안문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돼 다시 숙청당한다.

저자의 관점은 그러한 역사적.개인적 격변기에서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고민하는 덩샤오핑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화혁명을 기획한 마오쩌둥의 동참요구를 한 눈 질끈 감고 받아들였으면 고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끝내 외면하고 결국 숙청당하는 과정을 가족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큰 아들은 홍위병에 의해 반신불수가 되는 등 이 과정에서 가족들이 '반동분자의 자식' 으로 몰려 탄압받는 과정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채택한 개혁개방 노선이 현재 중국을 움직이는 대세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은 현대 중국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도 한다.

또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했지만 저자의 표현처럼 "느낀대로 적어 내려간 기록" 이므로 감각적으로 수월하게 읽힌다. 하지만 평균적 단행본보다 큰 판형에 6백40쪽 분량의 두툼한 부피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번역을 한 임계순(한양대 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문화혁명 후 개혁을 주도한 지도자들이 모두 숙청과 핍박을 받은 원로 혁명당원들이며, 이들을 계승한 2대 지도자들과 중국 각지의 주요 관리와 대학.기업의 책임자들도 모두 문화혁명 때 고통받고 단련된 사람들"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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