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명예의 전당 (25) - 지미 팍스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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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팍스는 1907년 메릴랜드 주에서, 아일랜드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를 도와 농장 일을 하는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남북전쟁 시절 남군에서 활약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군복을 입기로 결심했다. 이 때에 그의 나이는 10세였으며, 미국은 마침 1차 세계 대전에 막 개입한 상태였다.

그러나 멋모르고 찾아온 이 어린아이를 미군이 받아 줄 리는 없었다. 팍스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번에는 스포츠맨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학교에서 육상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곧 자신의 아버지가 과거 집안 사정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야구에 더 흥미를 보였고 학교 팀의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세미 프로 리그의 골즈보로 팀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팍스가 골즈보로에서 포수로서 두각을 보이자, 그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프랭크 "홈런" 베이커도 그 소문을 듣게 되었다. 데드 볼 시대의 대표적인 파워 히터였으며 나중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베이커는, 이 때에는 이스턴쇼어 리그의 이스튼 팀에서 감독을 맡고 있었다. 그는 팍스를 테스트해 보기로 결심했다.

베이커는 팍스를 테스트한 뒤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를 자기 팀에 끌어들였다. 결국 팍스는 16세의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새 팀에서 치른 첫 경기에서 홈런을 날렸고, 첫 시즌에 .29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시즌 막판에, 베이커는 팍스를 빅 리그로 넘길 결심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현역 시절 소속되어 있었던 팀들인 뉴욕 양키스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차례로 팍스를 데려가라는 제의를 하였는데, 카니 맥의 애슬레틱스가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현역 시절 맥 밑에서 활약하며 애슬레틱스의 첫 '왕조'이 팀은 20세기 동안 4차례의 황금기를 보냈다)를 이끌었던 베이커는, 과거의 보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2천 달러라는 헐값을 받고 자신의 유망주를 넘겼다. 이 때가 1924년이었다.

팍스는 당초 마이너 리그 팀으로 보내졌으나, 그가 즉시 두각을 나타내자 맥은 그를 빅 리그 팀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5년, 팍스는 대타요원으로 빅 리그 경기에 데뷔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해에는 10경기에 출장하여 9타수 6안타를 기록했을 뿐, 주로 마이너 리그에서 시즌을 보냈다. 당시까지 팍스의 포지션은 포수였는데, 애슬레틱스의 포수로는 이미 사이 퍼킨스가 있었고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미키 카크린도 이 시기에 팀에 들어왔기 때문에 팍스가 안방을 지킬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듬해에 팍스는 빅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장하였지만, 여전히 주로 대타요원 노릇만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기자 스토니 매클린은 팍스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이렇게 언급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어떤 자리가 주어지든 간에 스타가 될 것이다."

양키스가 모든 다른 팀들을 들러리로 만든 시기였던 1927년과 1928년에, 팍스는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는 팀의 필요에 따라 1루수와 3루수, 외야수 등 여러 포지션을 커버하였으며, 1927년에 3개의 홈런을 날린 데에 이어 다음해에는 13개를 추가하였다. 팍스는 후에, 자신이 그 시기에 타이 캅에게서 베이스러닝 기술과 슬라이딩 방법을 배웠다고 회상하였다(캅은 이 때에 화려했던 선수 생활의 대미를 애슬레틱스에서 장식하고 있었다).

1929 시즌을 앞두고, 맥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1루수 조 하우저를 인디언스로 넘기고, 팍스를 주전 1루수로 기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자, 팍스는 자신을 기용해 준 맥에게 보답하듯 맹타를 휘둘렀다.

기자 프레드 립은 갓 성인이 된 팍스의 활약을 보고, 단정적으로 한 가지 예언을 하였다. 그 예언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는 물론 21세밖에 안 된 애송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타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팍스는 1929 시즌 초반에 타율 4할을 넘나들었으며, 결국에 .354의 타율과 33홈런, 116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이는 모두 아메리칸 리그 내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된 기록이었다. 또한 그의 출루율은 리그 내의 어느 타자보다도 높았다(물론 당시에는 출루율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 해에 애슬레틱스는 104승을 올려, 15년만에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이 되었다. 팍스와 리그 타점왕 앨 시먼스, 다승왕 조지 언쇼와 방어율 수위에 오른 당대 최고의 투수 레프티 그로브 등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라인업을 앞세운 애슬레틱스는 리그 4연패와 월드 시리즈 3연패를 노리던 양키스를 쉽게 따돌렸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에서, 팍스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극의 주역 중 하나가 되었다.

(3편에 계속)

※ 명예의 전당 홈으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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