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맷집 좋아졌네… 잇단 악재에도 900선 꿋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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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증시의 맷집이 좋아졌다.

종합주가지수 1000 시대 안착에 대한 기대가 너무 성급했지만, 지수가 900선을 꿋꿋하게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적립식펀드 투자 등으로 두터워진 증시 자금줄과 높아진 기업 경쟁력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달라진 지수 흐름=과거 종합주가지수는 1000이 허물어지면 얼마 가지 못해 800대로 주저앉았다. 2000년 1월에는 1000 붕괴 15거래일 만에 지수가 800대로 내려갔다. 대우 회사채에 대한 환매 대책을 발표하는 등 정부가 안간힘을 썼지만 흐름을 되돌리진 못했다. 증시 과열에 대한 우려로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점도 국내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95년 10월에도 지수가 900선으로 내려온 지 한달 보름여만에 900선이 허물어졌다. 반도체 공급과잉으로 미국의 반도체 관련 주가가 폭락하자 국내 정보기술(IT)주도 힘없이 무너졌다. 95년 1월에는 정부가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증권사에 자금까지 지원했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900선이 무너졌다.

반면 올해는 지수가 마지막으로 네 자릿수에 있었던 3월14일(1019.69)이후 두 달여 동안 지수가 910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국제 유가의 급등과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가능성 등으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이후 북핵 문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 가능성 등 추가적인 대형 악재가 잇따랐지만 시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김세중 동원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900은 추가적인 악재를 모두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지난해 8월 700이었던 지수 지지선이 10월 800으로 높아졌고 최근 들어 다시 900선으로 올라서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 내성 키우기= 900선이 잘 방어되고 있는 것은 펀드 투자자들의 공이 크다. 머니마켓펀드(MMF)를 제외한 펀드 수탁액은 주가 하락에도 두달째 112~114조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적립식펀드로의 신규 자금유입은 매월 2000억~3000억원에 달한다. 연기금과 보험사의 주식투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동원증권은 선물.현물간 가격 차이에 따라 증시에 즉시 유입될 수 있는 자금이 6500억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또 기간별 실적의 부침이 있지만 삼성전자나 LG필립스LCD는 IT 시장을 이끌어가는 위치로 올라섰고, 현대차.포스코 등의 경쟁력과 매출.이익 규모도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졌다. 배당을 많이 하는 종목이 늘어나고 이런 종목은 전체 장세와 상관없이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증시 전문가는 앞으로 조정의 기간이 길어질 순 있지만 조정의 폭(가격 하락)이 더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상황에 따라 지수 900이 깨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추가 하락의 시작이 아니라 조정의 마지막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중 연구원은 "최근 거래대금이 1조6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투자자들이 매도 가격을 낮추면서까지 주식을 팔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홍은미 한화증권 갤러리아 지점장은 "많은 고객들이 직.간접적인 주식 투자가 장기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900선을 고수한 채 주가가 다시 오른다면 증시에 대한 투자자의 믿음이 한 단계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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