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책일기] 아름다운 삶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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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가 신곡을 썼을 무렵에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도서관에도 겨우 1천6백여권의 책이 있었답니다. 오늘의 우리는 그 시대 최고 지성보다 양적으로 훨씬 많은 글들을 읽어 '버리고'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지식보다 지혜가 아닐까요. 지혜로운, 아름다운 삶을 도와 줄 책을 골라보시기 바랍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요'

제가 있는 자리 책상 뒤에는 커다란 창이 있습니다. 늘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있었지요. 보이는 거라곤 안개처럼 뿌연 먼지에 휘감긴 도심 뿐이었으니까요. 쏟아지는 햇살은 모니터를 흐리게 만드는 '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책을 읽다 저도 모르게 블라인드를 걷었습니다. 제각각의 삶이 살아 움직이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기억 속엔 자동차들만 달리는데 초여름을 맞은 가로수들이 새삼 푸르게 보였습니다.

책은 산문집입니다. 마흔을 넘긴 작가가, 화가의 눈으로, 붓대신 펜으로 그린 삶입니다. 마천루의 빌딩 사이에서, 유흥가로 변해버린 동숭동을 보고, 어렸을 적 감기약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유서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삶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작가는 특별한 기교나 장치 따위 허세를 부리지 않고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아마 그가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 머리에 밝힌 글을 인용합니다.

"내 안에는 살 만한 사막 하나가 떡 버티고 있다. 웬만한 가뭄에도 갈라지지 않고 홍수가 나도 휩쓸려가지 않은 내 마음의 영토."

생각의 나무 8천5백원. 자세한 리뷰 읽기.

'인생을 변화 시키는 작은 원칙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회한이 밀려 옵니다. 세월이 남긴 것이라곤 덕지덕지 군살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한숨도 쉽니다.

책은 일본의 유력 언론들이 격찬한 만화 '시마 과장'의 작가가 썼습니다. '시마 과장'은 일본에서 특히 직장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입니다.

주인공 시마는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출세지향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샐러리 맨이지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갈 뿐이지만 어려운 일도 척척 풀고 주변엔 늘 도와주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럴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지요.

작가는 바로 시마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을 풀어 놓았습니다. 아름답고 강한 사람으로 사는 법,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은 따라갈 수 없을 어려운 것들이 아닌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요. 서점에 가보면 넘치고 넘쳐나는 게 '자기 개발'류의 책들이지만 조금은 다르게 읽히더군요.

현재 7천5백원.

'호밀밭의 파수꾼'

새롭게 출간돼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현대사회, 그중에서도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미국 사회의 위선과 거짓을 폭로한 걸작이지요.

아직 못읽으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면 고교에서 쫓겨난 17세 소년이 뉴욕 거리를 방황하며 겪는 일들을 독백으로 풀어 놓은 소설입니다. 직간접적으로 여러 영화와 음악에 영향을 끼쳤구요.
정작 작가 샐린저는 이 한 편의 소설 이후 은둔했습니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가 바로 그를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작품에 베어있는 시선은 그런 만큼 지극히 냉소적이고 허무하기까지 한데요. 영화에서처럼 작가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 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민음사 7천원.

제목은 밑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 써놓고 보니 사진에 커다란 글씨로 턱 박혀 있군요. 굳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제목이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입니다. 솔직히 더 나은 제목을 지을 자신도 없지만 말입니다.

무속에서 민족의 언어와 정신의 뿌리를 찾아 온 국어학자의 에세이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보다 훨씬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고 노름 '섰다'에서 '3·8 광땡'이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우리말에 관한 폭넓은 해석도 있습니다. 간단한 체질 진단부터 시작해 민간 요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지요.

이러니 출판사에서 얼마나 제목 때문에 고민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물론 공통 분모는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은 우리말의 뿌리를 캐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이었다는 겁니다. 우리 민족 곧 나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드 커버에 4백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에 비해 가격은 가벼운 편이군요. 딱딱한 학술서적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학사상사 9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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