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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실버 독일인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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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베를린 훔볼트대학 본관 2층 강의동에서 노인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카린 그라보스키(69)는 훔볼트 대학 재학생이다. 지난 16일 본관 2층 강의동에서 만난 그는 교회 건축사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인문고에서 교사로 일한 뒤 정년퇴직했다"며 "미술사에 관심이 많아 1998년부터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대학 캠퍼스에 가면 그와 같은 노인 대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94년 이후 대학에서 공부하는 50대 이상 사람은 2만4000명에서 4만1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절반 이상이 60~70대다. 70대 이상도 25%에 이른다. 훔볼트 대학 관계자는 "요즘처럼 많은 노인이 대학에서 공부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노인들의 선호 과목은 고대역사.철학.미학사 등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주지사였던 에르빈 토이펠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뮌헨대에 등록했다.

대부분 노인 학생은 전국 52개 대학이 개설한 특별 노인과정 재학생이다. 학기당 약 100유로(약 13만원)의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듣는다. 그러나 약 3%는 학기당 약 250유로의 등록금을 내고 정식 학위과정을 밟는 학생들이다.

노인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 매우 만족해한다. 훔볼트 대학 본관 1층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60대 중반의 노인들은 고기수프를 먹고 와인을 마시면서 학과공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재 7학기째인 이레네 만텔은 "오페라 역사.프로이센 역사나 베를린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식도 늘고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됐다"며 흡족해 했다. 3학기째인 레나테 피셔는"양로원이나 노인수용 시설에 결코 가지 않겠다"며 "그곳에는 사교의 기회가 너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노인 학생이 늘면서 손자뻘 되는 학생이 불편해하는 점도 있다. "노인들이 강의 주제와 상관없는 문제에 대해 자꾸 질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인들은 대학생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학생들을 위해 시험과목이나 세미나는 참석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노인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등 서로 배려한다. 독일 정부의 펠리치타스 자게빌 노인평생교육 담당관은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대화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세대 간 갈등이 해소되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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