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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엔 때가 있다 경쟁엔 패자부활 있다 학업중퇴 아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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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공부도 다 ‘때’가 있다 한다. 나도 제때에 대학을 갔다. 사진 찍기와 그림 그리기를 그토록 좋아했건만 당신 딸이 날라리인 줄 모르고 ‘미대는 날라리들이 가는 곳’이라 안 된다는 아버지 명대로 조신하게 모 여자대학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원하지도 않는 학교에 갔으니 공부는 뒷전. 영화 ‘건축학 개론’의 수지처럼 4년 내내 책 한 권을 가슴에 안고 다니며 지금의 남편과 연애질만 했다.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20여 년 후 시작했다. 모 전문대학 사진과. 딸 같은 학생들과 경쟁하니 체력도 감각도 뒤졌다. 하지만 꿈꿔 왔던 열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 중간고사 전날은 고시원에서 밤새워 공부하고, 누비바지에 털모자를 쓰고 한겨울 빌딩 옥상에 올라가 새벽까지 손을 호호 불며 셔터를 눌러대고. 행복하게 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공부의 때’라는 것은 ‘해야 할 때’가 아니라 ‘하고 싶은 때’였던 거다. 미국에 있는 친구 아들은 대학 갈 이유가 없다며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래도 공부는 해야 되겠다’ 하더니 집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우리나라 방송통신대학 같은 곳)에 들어가 2년 동안 죽어라 공부한 후 버클리로 편입하고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잘 산다 하더라.

 대학이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비록 학교를 떠났더라도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게 그 문이 365일, 24시간 늘 넓게 열려 있으면 좋겠다. 군부대 내 고졸 검정고시 대비 프로그램을 통해 틈틈이 공부를 한 사병 55명이 지난 7일 명예고교졸업식을 했다는 육군 1사단의 좋은 예도 있듯이 말이다.

 ‘여의도, 의정부, 울산, 수원, 인천’ 지난달 ‘묻지 마 폭력 현장들’이다. 잡힐 줄 알면서도 백주대로에 칼을 휘두르는 그들. 왜 묻지도 않고 폭력을 쓸까. (제 욕구 충족을 위해 남을 짓밟는 성범죄자들과는 좀 다르다.) 그들 모두 일정한 직업도 없다. 무한 경쟁 교육시스템에서 낙오된 중졸, 중퇴가 대부분이니 안정된 직장 얻기도 힘들고, 그로 인해 사회에선 고립되고 곱지 않은 시선의 가족과도 불화가 당연하고. 미래도 출구도 없는 삶. 그 누구라도 막막할 터인데.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이런 ‘사회적 외톨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범죄. ‘예측 불가’라 더 위험하다. 막다른 골목에 서서 자해하는 맘으로 폭력을 통해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그들.

 모든 경쟁에는 패자부활전이 있다. 무한경쟁에서 실패한 ‘패자’들에게 배움을 통한 ‘부활’의 기회를 주자. 범인을 잡고 가두고 먹이고 입히고 교화시킬 돈으로, 잠재적 범인이 될 수도 있는 그들 교육에 확실히 투자하라. 그들은 아직 젊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떠난 배움의 터전이 그리워 죽을 각오로 공부를 시작할 거다.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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