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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대원군역 유동근씨

중앙일보

입력

"대본을 처음 받아 보고는 진짜 눈물이 났습니다" 5월 9일 막을 올린 KBS 2TV 특별기획 드라마 〈명성황후〉 (극본 정하연ㆍ 연출 윤창범ㆍ 프로듀서 윤용훈) 에서 흥선대원군 역을 맡고 있는 유동근(44)씨는 31일 방송때 보인 '눈물 연기'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대원군이 눈물을 흘린 것은 경복궁 중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세금을 거두면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져 이에 대신들이 항의하자 대원군이 궁궐 중건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였다.

영국 공사가 중국을 처음 방문해 어머어마한 자금성의 규모에 놀라 기가 죽는 이야기를 자못 처연한 목소리로 상세히 들려주며 "자금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웃 나라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줄 정도의 궁궐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묻는 대목이다.

담판을 짓겠다며 달려들던 대신들이 '그토록 큰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는듯 "대원위 대감, 내 어찌 편히 죽기를 바라겠습니까"라며 대원군의 정치적 설득에 고개를 숙인다.

유씨의 이날 눈물 연기 장면은 약소국 지도자의 고뇌와 결단을 상징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연기였다는 평이다. 이날 방송 이후 격려 전화도 많이 받았단다.

"이웃 열강들에 둘러싸여 있기는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나라지만 자존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씨는 "국민의 혈세로 궁궐이나 지어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대원군의 종래 이미지는 본래 모습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대원군에 관한 고정된 인물관을 바꿔놓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열정을 갖고 연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구한말 상황을 재연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국민적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는 연출자 윤창범 PD도 같은 생각이다.

제작진은 흥선대원군이나 민 중전(명성황후)이 구한말 백성들의 지탄을 받았고 파벌정치와 매관매직 등으로 국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은 식민사학자들의 그릇된 평가라고 보고 있다.

이때문에 대원군 캐스팅은 윤PD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하다. '5척 단신에 빼빼 마르고 꼬장꼬장한' 면모로서는 왕실 개혁과 세도정치 혁파에 앞장섰던 지도자의 선굵은 이미지를 제대로 살려낼 수 없어 당당한 풍채에 강인함과 부드러움을동시에 갖춘 유씨를 발탁하게 된 것. 〈용의 눈물 〉의 태종 이방원 역을 비롯해 여러 임금 역할로 다져진 그의 카리스마도 제작진의 확신에 무게를 더해줬다.

흥선대원군의 재평가는 투기와 변덕으로 똘똘 뭉친 인물로 각인되어온 민 중전이 혼란기에 나라를 지탱한 국모로 복권되는 것과 수미쌍관을 이룬다.

6일 9회 방송분부터 민 중전의 배역은 문근영에서 이미연으로 바뀐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민 중전의 갈등이 서서히 가시화되면서 유씨의 진가가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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