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시대정신은 복지와 통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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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호기

대선 정국, 여기저기서 소통과 통합을 외치고 있다. 시대정신이란 당위성도 내세우고 있다. 우리 역사 속의 사례는 어땠을까.

 학문과 현실을 넘나드는 사회학자 김호기(연세대·52) 교수가 『시대정신과 지식인』(돌베개)을 냈다. 제목처럼 시대정신과 지식인, 두 키워드로 삼국시대 원효·최치원부터 조선시대 율곡 이이와 다산 정약용을 거쳐 대한민국의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사적 인물 24명을 들여다본다.

 김 교수는 11일 인터뷰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관통하는 코드로 ‘변화와 통합’을 꼽았다. 변화를 추구했던 인물로는 다산과 박정희·노무현을, 통합을 추구했던 인물로는 원효와 율곡·함석헌 등을 들었다. ‘한국사 지식인 계보’를 작성한 셈이다. 그는 박정희와 노무현에 대해 “박정희는 교사 출신, 노무현은 변호사 출신이란 점에서 정치인이기 이전에 지식인이기도 했다”며 “무엇보다 박정희는 산업화를, 노무현은 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박정희와 노무현을 같은 범주에 포함시켰다.

 “변화는 개혁의 의미를 가지면서 더 포괄적으로 우리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지난 60여 년을 대변하는 용어다. 박정희의 5·16에 대해선 평가가 갈릴 수 있어도 그가 산업화를 이뤄낸 리더였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민주화의 상징이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맞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아야 하지만 책에서는 노무현을 다뤘다. 더없이 극적이었던 노무현의 삶이 486세대를 포함해 젊은 세대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올해 대선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결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올해의 시대정신은 복지와 통합이라고 본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는 시대정신은 복지다. 다른 나라처럼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경로를 우리도 밟는 것이다. 통합 역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쌓인 그늘과 사회갈등 해소를 아우르는 의미다.”

 -시대정신을 구현해온 지식인들에게서 얻는 교훈은.

 “첫째, 생산적인 자기부정이다. 둘째, 대안모색의 치열함이다. 셋째, 중요한 것은 개혁정신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기 위해 지식인은 자기 사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부해야 한다. 자신이 선 자리를 정확히 인식하고 스스로 껍데기를 깨고 나올 때 가야 할 길이 보이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을 든다면.

 “소설가 황순원과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다. 지식인에겐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이란 두 가지 책임이 있는데, 이러한 책임을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라 생각한다. 리영희는 열정적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황순원은 고독한 지식인의 글쓰기를 실현했다. 두 분 모두 진실 탐구라는 지식인의 본령에서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규정할 수 없다고 본다.”

 -24명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다.

 “변화와 통합이란 키워드로 선별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의 후속작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서』도 곧 낼 예정인데 그 책에는 소설가 박완서와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가 등장한다.”

 -김 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듯하다.

 “나의 이념적 정체성을 중도진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문제의 해결은 중도적 기획과 진보적 기획이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를 지지하지 않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철학적 보수주의라고 부르는데 그런 보수주의는 인정하고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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