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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사실의 언어 신념의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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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영기
논설위원

신념의 언어가 넘치고 사실의 언어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신념의 언어는 사실의 한쪽만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한쪽 사실만 보면서 신념을 쌓게 되면 다른 쪽은 아예 안 보고 싶게 되죠. 다른 쪽 사실 앞에 분노가 치미는 감정적 단계에까지 가게 되면 신념의 언어는 파괴성을 드러냅니다. 반면 사실의 언어는 견고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엄연한 현실에서 사실의 언어는 출발합니다. 사실의 언어가 곳곳에 스며든 사회에선 책임성이 존중받습니다. 책임은 실적에 대한 것이고 실적은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만으로 세상을 흔들어 놓는 신념의 사회와 대조적이죠.

 1998~2012년 독일의 15년을 이끌어온 두 명의 총리는 사실의 언어를 구사한 지도자들입니다. 정파도 다르고 신념도 다르지만 그들은 신념의 언어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종종 자기가 속한 정파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념 과잉, 책임 결핍의 시대에 독일 지도자의 선택의 순간들은 짜릿한 청량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김택환, 『넥스트 코리아』 22~39쪽, 메디치)

 먼저 게르하르트 슈뢰더(재임기간 1998~2005년) 총리. 슈뢰더의 전임은 독일 통일의 위업을 완성한 헬무트 콜(1982~98년)입니다.

 슈뢰더는 14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17살 때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닌 타고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19세 때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전통적 좌익이념에 몰두했는데 정연한 논리와 탁월한 언변, 정열적인 활동으로 그는 순식간에 사민당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런 인생을 살았기에 슈뢰더가 98년 집권했을 때 ‘역사상 가장 좌파적인’ 총리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고 합니다.

 슈뢰더가 콜에게서 물려받은 통일조국은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1조 달러에 가까운 통일비용이 동독 지역에 투입되고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저성장과 재정적자, 실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유럽의 병자’가 슈뢰더가 직면한 독일의 현실이었죠.

 유럽의 병자는 2002년 경제성장률 0.0%, 실업률 9.8%, 재정적자율 3.7%를 기록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의 언어 앞에 슈뢰더는 신념을 버리고 책임을 선택합니다. 이듬해 ‘어젠다 2010’이라는 국가경제 회생정책을 내놓습니다. 말이 좋아 어젠다지 결국 2010년까지 민중이 희생해야 할 삶의 목록들을 제시한 겁니다. 실업수당 수령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고, 연금수령 시점을 65세에서 67세로 늘리는가 하면 부가가치세를 16%에서 19%로 올리는 등 희생의 목록은 끝이 없었습니다. 좌파 총리에겐 정파의 신념보다 유럽의 병자를 살려내는 국가의 이익이 더 절실했다고 합니다.

 신념을 배반하고 책임을 택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어젠다 2010’ 시행 3년 만인 2005년 선거에서 그는 정권을 내놔야 했습니다. 유권자는 때로 배고픈 맹수와 같습니다. 선의를 가진 조련사도 당장 먹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후임 총리는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앙겔라 메르켈입니다. 메르켈은 슈뢰더의 정책을 뚝심 있게 이어갔습니다. 메르켈은 정책의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아예 사민당과 대연정을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공동정부나 거국내각을 꾸린 거죠. 국익정치 앞에 정파적 신념은 아랫자리로 내려왔습니다. 메르켈은 총리취임 연설에서 “어젠다 2010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전임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한다. 그는 용기 있고 단호하게 개혁을 추진해왔다”며 좌파 총리를 찬양했습니다. 정파를 초월해 메르켈-슈뢰더가 썼던 국민희생정책은 2008년 실적으로 보상받습니다.

 금융위기가 세계를 흔들어놨던 2008년 독일은 경제성장률 1.3%, 실업률 7.8%, 재정적자율 -0.1%의 실적을 기록합니다. 6년 고난의 세월을 보낸 뒤 독일국민은 신념의 언어를 버리고 사실의 언어를 중시한 지도자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2012년 독일의 위상은 유럽을 구원하는 젖줄이고 삶의 질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신념의 언어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인권이 절대적으로 결핍된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 같은 언어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금은 어느 편인가 하면 신념이 넘치고 책임이 결핍된 시대입니다. 여기선 사실의 언어가 이질적인 것을 통합하고 나라를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