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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 잘려…" 김성근 한화 포기이유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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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근 감독의 선택은 프로구단이 아닌 독립구단이었다. 그는 고양 원더스와 2년 재계약하며 프로 복귀 의지를 접었다. 김 감독이 7일 고양 원더스 감독실의 대형 사진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고양=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이 눈가의 주름을 만졌다. “요새 주름이 늘었네. 젊게 살아야 되는데 말이야.”

 7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 훈련장에서 만난 김성근은 조금 들떠 있었다. 그는 “홍재용이 두산에 가게 됐어. 프로에 가게 됐으니 당연히 축하할 일인데, 좀 서운하기도 하네. 딸 시집 보내는 것처럼 말이야”라며 웃었다.

 고양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단으로 창단했다. 프로팀에서 쫓겨난, 혹은 프로 문턱에도 가지 못한 선수들을 모았다. 김성근 아래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선수 중 5명이 1년도 안 돼 프로선수가 됐다. 야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성과였다. 같은 날 김성근은 선수 한 명을 또 떠나보냈다. 야구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한 무명 선수다. 김성근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아버님(김성근), 우리 아들이 입대하면서 봉투 하나를 줬어요. 5000엔(약 7만원)이 들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아버님께 되돌려 드린다고요’.

 김성근은 지난 2월 고양 선수 전원에게 5000엔씩을 용돈으로 줬다. 일본에서 전지훈련하느라 명절을 쇠지 못하는 이들에게 준 작은 선물이었다. 감독에게 처음으로 용돈을 받은 무명 선수는 입대 전 돈 봉투를 어머니께 맡겼다. 그는 “군대에서 월급을 모을 거예요. 거기에 5000엔을 보태 나중에 감독님께 돌려 드릴 겁니다”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김성근에게 “야구밖에 몰랐던 우리 아들이 이제 어른 다 됐다”며 고마워했다. 김성근은 “프로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야. 얘들 하나하나 사연이 있어. 다 드라마라고. 그만두는 선수들도 내게 찾아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해. 야구할 기회를 가진 걸 고마워하는 거지. 프로에서는 자기를 자른다고 원망만 해”라고 했다.

김성근 감독이 고양 선수들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공. 선수들의 각오와 생일 축하 문구가 빼곡히 적혀 있다.

 SK 와이번스 감독에서 물러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김성근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사람 같았다. 그는 “내년에는 더 뛰어야지. 프로에 더 많은 선수를 보낼 거야. 그러면 다른 선수들에게 또 기회가 생기겠지. 그게 고양이 존재하는 이유야. 내 보람이고”라고 했다.

 사실 그는 다시 프로팀 감독이 될 뻔했다. 언제나처럼 위기의 팀은 김성근을 찾았다. 올 시즌 초반부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던 한화는 위기를 극복할 강한 리더십을 갈망했다. 김성근이었다. 한화 그룹은 초여름부터 수차례에 걸쳐 김성근을 찾아가 야구단 재건에 관해 물었다. 팀 개혁 방안을 김성근에게서 구하고자 한 것이다. 단지 조언만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 한화는 김성근을 새 감독으로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밤 한화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한대화 감독을 퇴진시켰다. 사임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해임이었다. 한화는 김성근을 새 사령탑 후보 1순위에 올렸다. 31년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이 그만큼 탁월한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

 김성근은 1990년대 태평양·쌍방울 등 약팀을 맡아 중위권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2002년엔 LG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 SK 지휘봉을 잡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고, 2009년 준우승에 이어 2010년 다시 챔피언에 올랐다. 해태와 삼성 등 강팀에서 열 차례 우승한 김응용과 달리 김성근은 약팀을 강하게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2009년 이후 계속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한화에 가장 필요한 인물은 김성근이었다.

 한대화 감독 퇴진 후 이틀이 지난 29일 김성근은 고양과 계약을 2년 연장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당연히 한화가 김성근을 ‘모셔갈’ 줄 알았는데 그는 가난한 독립 야구단에 남았다. 김성근은 “여기서는 날 자르지 않았으니까. 난 프로팀에서 자주 쫓겨나지 않았나”라며 “고양의 허민 구단주가 ‘감독님을 동지로 생각하고 있다.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구단주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고,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을 보면서 여기에 남기로 결정했어”라고 말했다.

 고양은 프로야구 퓨처스(2군) 리그 팀과 교류경기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회인 야구팀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야구의 신(야신)’으로까지 불리는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이 지휘하기에는 고양의 스케일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고양에 남으며 이 한마디를 남겼다. “이제 프로로 갈 일은 없지 않겠어?” 김성근은 앞으로 프로팀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아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로의 시각에서 보면 은퇴 선언이나 다름없다. 위기에 빠진 팀들은 아직도 고령의 김성근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스카우트 제안일지도 모를 한화의 제안을 거절했다.

 김성근은 “사실 많이 고민했어. 다시 프로에 돌아간다면 어떤 야구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 고양에 남는 것과 프로로 가는 것을 같은 무게로 고민했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올 시즌 프로야구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냈다. 김성근은 “올해 야구가 위기야. 어느 팀도 강하지 않아. 올해 같으면 8개 구단 모두 우승할 수 있거든. 그런데 아무도 치고 나가지 못하잖아. 3연패, 5연패를 돌아가면서 하니까 나중엔 비슷해져”라고 했다. 프로야구가 700만 관중을 바라볼 만큼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는 “야구의 수준을 높이지 못하면 인기는 언제든지 식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성근의 이런 말들은 그가 프로에 복귀해 다른 감독들과 전략 싸움을 하고 선수들을 강하게 키워내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비춰졌다. 이 때문에 모든 야구 관계자는 김성근이 한화로 갈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고양이 나를 원했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자르지 않는데, 내가 선수들을 두고 갈 수 없잖아. 실패한 선수들을 모아 가르쳐서 프로선수들과 싸울 수 있도록 키워내야지. 해외 구단에서도 고양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일 만큼 말이야.”

 김성근이 고양을 택한 이유는 ‘해고의 공포’로부터의 해방 때문이었다. 그는 고교 감독 시절부터 무려 12차례나 해임(연장되지 않은 계약 포함)된 인물이다. 특히 SK에서는 4년간 세 차례나 우승하고도 구단과의 마찰로 경질됐다. 수없이 해임을 당한 김성근이지만 SK에서 잘렸을 때는 그도 놀랐고 세상도 놀랐다.

 그는 감독으로서 항상 최고의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구단과 번번이 부딪쳤다. 김성근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구단들은 나중에 그를 불편해했다. 야구에 관해서는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과 함께하기 싫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성적을 내면 구단은 다루기 쉬운 감독을 원했다. 그때마다 김성근은 자리를 걸고 구단과 싸웠고, 피고용자로서 항상 졌다.

 김성근은 “한대화 감독이 시즌 중 그만두는 것을 보고 (한화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한화 유니폼을 입기도 전에 야구인의 자존심을 걸고 생각을 접었다. 프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타협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구단과 또 한번 다른 길을 택한 김성근을 프로팀들은 더욱 경계할 거고, 그래서 김성근은 앞으로 프로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한 것이다.

 김성근의 마음을 고양이 다시 잡은 건 돈이나 명예가 아닌 진심을 통해서였다. 허민 구단주는 “우리 선수 중 하나라도 프로에 간다면 소원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벌써 몇 명씩 갔다. 김성근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재계약을 요청했다. 서른여섯 살 젊은 구단 대표는 마음을 다해 김성근을 예우했다. ‘잘리지 않은’ 김성근은 흔쾌히 계약 연장에 동의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온라인 게임업체 네오플을 창업했던 허 구단주는 회사 매각 후 2008년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전설적인 너클볼러 필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을 배웠고, 자신 소유의 빌딩에 개인 야구연습장을 만들 정도로 괴짜 야구 매니어다. 그리고 김성근의 열혈 팬이다.

 허 구단주는 지난해 고양을 창단한 뒤 삼고초려 끝에 김성근을 초대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는 모그룹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프로야구 대표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허 구단주는 사비를 들여 팀을 운영하면서 소속 선수들을 원하는 프로구단이 있다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보냈다. 프로야구처럼 홍보나 수익을 위해 구단을 운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는 순수하게 야구만 바라보고 사랑한다. 같은 마음으로 김성근을 존경하고 위한다. 김성근에게 허 구단주는 고용주가 아니라 후원자다. 김성근의 마음은 고양에 뿌리 박혔다. 수만 관중의 함성과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 수억원의 연봉과 통산 1234승57무1036패 기록이 있는 프로를 뒤로하고서다.

 돌아보면 그는 늘 그랬다. 김성근은 “난 평생 모퉁이에 서 있었지. 한 발만 물러서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했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만족하는 법을 몰랐고,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했던 게 그의 ‘모퉁이 인생’이다.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했다면 그는 장수 감독으로 2000승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성근은 코치나 선수를 대신해 구단과 싸웠고, 결국 해고됐다. 그리고 또다시 고용됐다. 쉬운 길을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문득 김성근이 SK에서 한창 잘나갈 때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프로에서 잘렸거나, 부상 경력이 있거나, 아예 프로구단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을 모아놓은 팀이 있다면 그 선수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죽도록 훈련해서 강해지는 성취감과 재기에 성공하는 보람을 선수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는 거였다. 그것이 김성근이 스케치했던 ‘마지막 야구’이자 ‘모퉁이 인생’의 갈무리였다. 화려한 우승 감독보다 공포의 외인구단 감독이 김성근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 몇 년 뒤 놀랍게도 그런 야구단이 생겼다. 외인구단은 김성근을 감독으로 추대했다. 그 외인구단에는 하루하루가 위기인 선수들밖에 없다. 프로 꼴찌팀 한화의 ‘배부른 위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이들이다. 김성근은 위기의 집합체인 고양을 계속 이끌기로 했다. 백전노장은 여기서 야구 인생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김성근은 말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최고의 위기관리는 위기를 만들지 않는 거야. 위기가 오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노력해야지. 그리고 위기가 오면 최대한 짧게 끝내야 해. 그러려면 늘 정신 바짝 차리고 뛰어야지.”

고양=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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