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7. 거듭나는 G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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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모터스(GM)는 1백년의 역사 속에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20세기를 '자동차의 시대' 로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그런 GM이 21세기를 맞아 일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몸집만 거대한 '늙은 공룡' 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GM의 신무기는 '속도경영' 이다.

자동차 개발.조립.부품조달.판매 등 모든 공정에서 '크고 빠르게' 달리고 있다. 이번주부터 대우자동차 인수를 위한 협상을 본격화한 GM의 실체와 전략을 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진단한다.

지난 17일 미국 디트로이트시 GM 본사에서 만난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마침 발표된 자동차 소비자 조사기관 J D 파워의 '2001년 품질 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소비자가 제품결함을 지적한 빈도가 전년보다 11% 줄어 미국 차업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고, 일본차와의 격차도 좁혀졌기 때문이다.

토니 세르본 GM 홍보담당 이사는 연신 싱글거리며 "품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혁신 노력이 가시화한 결과" 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혁신의 요체는 이 거대한 회사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속도경영' 이었다.

◇ 크지만 빠르게=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 GM에서 요즘 가장 흔하게 들리는 말은 '빠르게 달린다(Go Fast)' 이다. 관료주의와 느릿한 의사결정 등 '공룡병' 을 치유해 '크고 빠른'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릭 왜고너 GM 사장의 방에는 세발 걸상 위에 '크고 빠르게(Big And Fast)' 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왜고너 사장은 "천문학적인 기술 개발비가 필요하고 소비자의 욕구가 빠르게 변하는 차 산업에서는 미식축구나 농구처럼 '크고 빠른' 기업이 승리한다" 며 "실수를 해도 좋으니 빠르게 움직이라고 다그치고 있다" 고 말한다.

이같은 속도경영은 개발.판매 등 전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보기술(IT) 등이 적극 활용된 개발 부문. 디트로이트 북서쪽 워런에 있는 GM 디자인 센터에는 디자인 인력 뿐 아니라 기술.마케팅 담당 인력이 상주한다.

컴퓨터 3차원 입체영상으로 새로운 모델의 시안을 띄워놓으면 그 자리에서 각자가 의견을 내놓고 디자인을 확정한다.

디자인이 나오면 제조.마케팅 부문의 의견을 순서대로 듣고 수정을 하느라 걸린 시간들을 없애 GM은 새 차의 디자인 확정부터 첫 제품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과거 36개월에서 지난해 18개월까지로 절반 가량 단축했다.

GM 기술센터 제이 웨젤 부사장은 "1998~2000년 3년 동안 34%의 생산성 향상을 이뤄 이미 1억 달러 이상의 제품개발비용을 절약했고 올해는 20%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한다" 고 말했다.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햄트램크 공장. 캐딜락 등을 생산하는 이곳은 부품을 쌓아두는 창고가 없다.

부품을 싣고 오는 하루 평균 30대의 트럭들은 정해진 순서와 시간에 따라 공장에 들어오는 대로 곧바로 조립 라인에 부품을 부려 놓고 간다. 창고에서 조립라인까지 옮기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없앤 것이다. 공장 관계자는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부품업체들도 부품 소모량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부품 조달에 시간 낭비가 없다" 고 말했다.

◇ 신기술 선점이 살 길=1908년 설립된 GM의 경쟁력은 오랜 역사에서 쌓인 기술력이 바탕이다. GM은 1901년 세계 최초로 속도계(올스모빌)를 개발했다.

전기 헤드라이트(1909년, 캐딜락).완전자동변속기(1940년 올스모빌).자동 브레이크 시스템(ABS.90년대).첫 상용화 전기차 EV1(90년대) 등 50여 가지가 GM이 자랑하는 개발품이다.

GM은 90년대 들어 인공위성과 이동통신.인터넷 등 IT를 차에 접목하는 데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인터넷을 통한 차 판매는 연내에 한국 등 전세계 40개 국가로 확대할 예정이다. 포드.크라이슬러 등 미 자동차 3사의 공동 부품 전자상거래 사업인 '코비신트' 도 GM이 주도했다.

GM이 유럽(피아트.오펠).아시아(스즈키.이스즈.후지) 등 전세계에 생산.개발거점을 갖고 있으면서 각 회사의 장점을 공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GM은 외국차 업체의 지분을 1백% 사들이지는 않고 그 업체가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제휴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왜고너 사장은 "지분 1백%를 사들이면 시너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GM도 고민은 있다. 한때 미국시장 내에서 49%(1967년)까지 올라갔다가 현재 30% 수준까지 계속 떨어져온 시장점유율을 어떻게 끌어올릴지가 당면과제다.

GM은 특히 젊은 층이 디자인과 제품 이미지면에서 일본차에 비해 밀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최대 약점이다. 차 모델들이 너무 많고, 이들간에 뚜렷한 차별화가 되지 않아 서로 '뜯어 먹는' 양상도 보인다.

왜고너 사장은 "디자인이나 제품 이미지는 기술력.전략적 제휴 등에 비하면 단기간 내에 극복될 수 있다" 고 말했다.

디트로이트=이영렬 기자 younglee@joongang.co.kr>
도움=복득규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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