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당이 선수 친 대우차 협상

중앙일보

입력

대우자동차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9일 제너럴모터스(GM)와의 공식 협상을 개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한장 더 냈다.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 명의의 '대우차 관련 보도 자제 협조 요청' 이란 제목의 자료에서 "대우차와 채권금융기관들은 향후 대우차의 매수와 관련한 모든 협의 내용을 최종 계약서가 서명될 때까지 비밀 유지키로 합의하였다" 면서 "협상의 성공적 귀결을 위하여 각 언론사의 각별한 협조를 간곡히 부탁한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언론사는 이날 오후 3시 산업은행과 GM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강운태 제2조정위원장의 발언에 따라 미리 보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오전 10시쯤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4역회의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월 4일부터 대우차 협상팀은 우리나라가 아닌 제3국에서 대우차 매각협상에 들어간다" 고 밝혔다.

공식 협상을 개시한다는 것 외에 특별한 내용이 없는 산업은행의 공식 보도자료보다 6월 4일부터 제3국에서 협상한다는 등 앞선 내용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운태 제2조정위원장이 당정 협의 내용을 빈번하게 발표하자 과천 경제부처 일각에선 '경제 부총리가 둘' 이라고 비유할 정도다.

그는 상속.증여세에 대한 포괄주의 연내 도입(재정경제부는 합의하지 않았으며 연내 도입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해운.종합상사.건설.조선 업종의 부채비율 2백% 적용 제외,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탄력적 운용,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 5백만원으로 확대 등 굵직한 정책을 먼저 발표했으며 이때마다 해당 부처는 곤혹스러워했다.

여당과 경제부처가 당정협의를 거쳐 결정한 내용에 대해 여당이 먼저 발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더구나 포드와의 협상이 깨진 쓰라린 경험이 있는 대우차 매각 문제를 놓고 섣불리 거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 더구나 정치인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고 말했다.

여당 당직자는 자신이 아는 것을 과시하려 들지 말고, 진정 무엇이 나라 경제와 기업을 위하는 일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송상훈 경제부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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