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살리자 2부] 14.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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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관광 1번지' 라는 제주의 명성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

제주도 공무원들이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예전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제주도를 관광하라" 고 권했지만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후엔 자기 고장으로 모시기 위해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과 싸움을 벌이기도 버거운 마당에 국내 자치단체들이 관광시장에 가세해 제주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제주도는 해법을 국제자유도시에서 찾고 있다. 국적에 관계 없이 사람과 자본.상품.정보의 이동과 유통, 기업.금융활동이 자유로운 섬-.

제주도는 2010년까지 천혜의 자연환경과 섬 특유의 토속문화를 살린 관광.문화.예술.산업.물류단지를 조성해 관광산업을 일으키고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제주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는 정부가 종합개발계획으로 추진하지 않는 한 한 지자체의 공허한 구상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왜 국제자유도시인가〓제주도는 1997년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자 동북아 국제 관문의 중심지가 바뀔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말레이시아는 92년 라부안 지역을 국제투자자유지역으로 지정했고, 중국도 90년부터 상하이(上海)푸둥지구를 국제 무역.금융 중심지로 바꾸기 위해 뛰고 있었다. 일본은 이미 71년 오키나와섬을 내국인 면세쇼핑 허용지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앞서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91년에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94년부터 6년간 1조6천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근민(禹瑾敏)제주도지사는 "변화의 물결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한마디로 절박한 심정이었다" 며 "98년 9월 대통령 순방 때 처음으로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건의했고 차근차근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고 밝혔다.

◇ 어떻게 개발하나〓제주도는 99년 3월 대통령에게 국제자유도시 구상 전략을 보고한 뒤 건설교통부와 함께 이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건교부가 99년 말 미국의 존스 랭 라살르(JLL)사에 맡겨 지난해 6월 완료된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개발 타당성 및 기본계획' 용역 보고서가 사업 구체화의 첫 작품이다.

보고서에는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의 근간이 될 내용들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내년부터 2010년까지 제주도를 복합레저단지와 국제회의 산업기반을 갖춘 국제관광 자유도시로 조성할 경우 물류와 금융이 결합된 '복합형 국제자유도시' 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주도를 ▶공항자유무역지역(제주시)▶휴양형 주거단지(서귀포시)▶중문산업단지 및 수족관(중문)▶서귀포항 개발▶과학기술단지(제주대 인근)등 5개지역으로 특화해야 한다는 선도 프로젝트도 제시됐다. 2010년까지 4조6천1백억여원의 투자재원 중 공공부문이 70%를 조달하는 '관주도형 전략' 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사(公社)를 거느린 정부기구인 제주국제투자개발청(JIIDA)을 민간주도형으로 설립해 개발정책과 전략수립.예산 등을 전담토록 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보고서는 특히 ▶외국인투자촉진법▶조세특례제한법▶내국인 관광객 면세쇼핑 허용 관세법▶출입국관리법 등의 법령 손질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국제자유도시 지원 특례법' 이 제정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JLL사는 이 프로젝트를 2010년까지 완료할 경우 제주 관광객은 현재 4백여만명에서 9백40만명으로, 도내 총생산(GRP)은 4조원에서 1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 지금부터가 문제〓제주 국제자유도시 사업은 전혀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다. 63년 '제주도 자유지역 구상' 이 국가안보 문제로 유보됐고, 75년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한 특정 자유지역 개발 구상이 기초조사에 그친 적이 있다. 80년엔 제주 자유항 지정계획이 재원 부족으로 도중 하차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자유도시 전략은 지난해 6월 제안 수준의 용역보고서가 나온 것이 사실상 실적의 전부다. 지난 1월에 건교부에 추진지원단이 설치됐고, 2월 민주당 정책기획단이 출범하는 등 구상에만 3년 정도를 보낸 셈이다. 이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플랜을 구체화하고 법안을 마련할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재원 확보도 문제다. 4조6천억원에 이르는 투자 재원 중 공공부문이 3조1천7백억원에 이르지만 계획대로 투자가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제자유도시 건설이 제주도 차원에서만 논의되고 추진될 수 없는 이유다.

제주도 김창희(金暢禧)국제자유도시 추진기획단장은 "중앙 정부가 서둘러 특례법을 만들고 사업을 추진해야 제주가 거듭날 수 있다" 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ygodo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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