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80점 안 되면 쫓겨나 … 공부 열심히 해야 공 찰 수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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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학생이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하자. 운동에만 집중해야 할까. 만약 그 종목에서 성공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찌해야 하나. 다른 진로를 찾자니 그땐 쌓아둔 지식이 부족할지 모른다. 공부에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중요하게 여기는 중학교 축구클럽이 있다. 소속 학생들은 매일 훈련을 받고 주3회 야간 국·영·수 수업을 듣는다. 성적이 떨어지면 다음 시험에서 만회하기 전까지 운동을 하지 못한다.

글=조한대 기자 , 사진=김진원 기자

매일 훈련을 하고 주 3회 야간 국·영·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이들은 축구의 즐거움과 공부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 지난달 31일 오후 3시30분 송파구 방이중학교 운동장. 초록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학생 10여 명이 공을 하나씩 발 아래 두고 골라인을 따라 한 줄로 섰다. 코치 지시에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 공을 반대편 골라인까지 드리블해 갔다. 반대편 골라인에 도착한 학생들은 몸을 돌려 다시 공을 몰고 왔던 곳으로 드리블했다. 쉴새 없이 반복되는 인터벌 훈련과 뜨거운 햇살로 얼굴에는 비 오듯 땀이 흘렀다. 지칠 법도 하지만 학생들은 “파이팅~!”이라고 소리치며 서로 독려했다.

  # 오후 7시 15분 방이중의 한 교실. 오후 훈련이 끝난 후 샤워와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업 초반 시끌벅적 떠들었지만 문제 푸는 시간이 되자 이내 조용해졌다. 짝꿍과 잡담하며 키득거리기는 했으나 조는 사람은 없었다. 수업은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방이중FC’ 학생들의 방과후 일과다. 방이중FC는 올해 3월에 창단했다. 배수범(40) 체육부장이 축구클럽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안건섭(61) 교장은 여기에 조건을 덧붙였다. ‘공부도 잘하는 축구선수’를 만들기로 했다. 방이중 운동장을 대여해 쓰는 유소년 축구클럽인 ‘UB클럽’에서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과 그 학부모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입학 후 학교시험 평균 80점을 넘지 못하면 클럽에서 나갈 각오가 돼 있는 학생만 받겠습니다.” 안 교장이 학부모에게 ‘선전포고’ 했다. 학생 13명이 지원했다.

  안 교장은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너무 일찍 진로를 결정해야 하고 선택한 길에서 도태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웠다”며 “중학교 때만큼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평균 80점 이상을 받으면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80점 이하를 받으면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중간고사에서 평균 70점을 받았다가 기말고사에서 75점을 받으면 성적이 오른 점을 감안해 운동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기말고사에서 지난 중간고사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다음 시험에서 성적이 오를 때까지 운동을 하지 못한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학생 13명 중 5명은 80점을 넘었다. 중간고사 평균이 80점 이하였던 학생들도 1명 외에는 모두 기말고사에서 점수가 올랐다. 1명은 떨어진 성적이 평균 1.5점에 불과해 한 번의 기회가 주어져 구제됐다.

  박준수(13)군은 축구부가 있는 여러 초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었지만 방이중을 택했다. 박군은 “축구로 성공한다 해도 선수로서의 인생은 짧지만 공부를 하면 후에 감독 또는 축구 관련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군 아버지 박성래(45)씨는 “운동을 하며 공부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전했다.

  조재현(13)군은 여름방학이 돼서야 클럽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기량이 좋아 축구부에 들어갔지만 조군 부모는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4개월 만에 그만두게 했다. 아이가 너무나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여 6학년 때 다시 축구부에 들여 보냈지만 이미 또래들과 실력 차이가 나버린 상태였다. 조군은 축구를 포기했다. 방이중에 들어와 축구클럽을 보니 다시 하고 싶어졌다. “공부를 열심히 할 테니 클럽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떼를 썼다. 어머니 이임숙(41)씨는 “아이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까 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아이가 행복해 해 만족한다”며 흐뭇해 했다. 방이중 시스템이 꿈을 향해 다시 뛸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장현재(13)군은 중간고사보다 기말고사 때 평균 10점이 올랐다. 그 이유는 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장군 아버지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축구를 시키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장군은 기말고사 2주 전부터 시험 준비를 했다. 1주일 전부터는 새벽 1~2시까지 공부했다. 장군은 “아버지는 90점 이상을 원하시지만 사실 90점은 조금 무리고 82점이 목표”라며 미소 지었다.

  배수범 부장은 “우리 클럽 학생 중엔 미래 축구선수뿐 아니라 축구 전문 캐스터, 축구협회 행정가 같은 축구 관련 전문가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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