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소형차 무섭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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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미국 소형차 시장에서 현대차가 고전하고 있다. 현대차의 소형차 엑센트(국내명 베르나)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23.6% 줄었다.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역시 맥을 못 춰 6.6% 감소했다. 아반떼 판매가 미국에서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가 처음이다.

이처럼 소형차 판매가 급감한 이유는 도요타가 2003년 하반기 내놓은 싸이언(SCION)의 판매 호조 때문이라는 게 현대차의 분석이다. 싸이언은 도요타가 미국 소비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차를 구입하는 '엔트리 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스포츠차 스타일의 소형차다. 이 시장에선 혼다의 시빅이 줄곧 1위를 달려왔다.

도요타는 2003년 6월 말 싸이언을 미국에 출시했다. 그해 연말까지 1만898대가 팔렸다. 지난해엔 9만9259대나 팔렸다. 이 차는 현대차의 베르나보다 15%, 아반떼보다 5~10% 비싸다.

현대차가 미국에 수출하는 차종 중 소형차 점유율이 가장 높다. 2003년에는 44%, 지난해는 37%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미국 소형차 시장의 25~30%를 점유, 수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에 나온 싸이언의 스포츠 쿠페(tC)는 현대차의 동급 티뷰론(국내명 투스카니)을 겨냥했다. 가격을 투스카니보다 10~99달러 싸게 내놓으면서 기본 사양은 오히려 더 좋게 했다.

도요타는 미국에서 소형차 시장을 내주더라도 40대 이후 중형차급에선 도요타 캠리나 렉서스 구매로 돌아온다며 중고급차 판매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젊은 층 시장이 점차 중요해지자 도요타는 전략을 바꿨다. 1987년 20대 자동차 구매자의 45%가 도요타 고객이었으나 98년에는 30%로 하락한 것이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도요타는 2001년부터 싸이언 개발에 들어갔다.

현대차 관계자는 "소형차 판매가 줄어든 것은 현대차가 2, 3년 이상 된 노후 모델인데다 부가가치 높은 중형차와 싼타페 판매에 주력했기 때문"이라며 "올 하반기 베르나 후속 모델이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소형차의 경우 별로 이익이 나지 않아 더 이상 가격을 내리기 어려운데다 싸이언의 가격과 디자인을 뛰어 넘기 어려워 고민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미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의 현대차 견제가 시작됐다"며 "도요타가 현대차를 견제하는 전략을 제대로 분석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업체들은 안정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비용 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점점 원가가 올라가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대차 마케팅실 관계자는 "가격차를 줄이기 위해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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