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늦바람 난 무주 노년들, 악기가 애인이지요

중앙일보

입력 2012.09.03 01:27

업데이트 2012.09.03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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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무주군의 65세 이상 주민들로 구성된 ‘산골노인의 음악세상’ 공연단. 30여 명이 아코디언과 키보드·통기타·색소폰 등을 다루는 합주단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농민 오충근(75)씨는 요즘 주변에서 “늦바람이 났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집은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읍내 한 번 가려면 15분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20여 분을 가야 하는 두메산골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불편을 무릅쓰고 매주 화·목요일 무주읍 종합복지관으로 출근을 한다. 농번기인 요즘에도 거의 빠지는 날이 없다. 지난해부터 기타에 필이 꽂혔기 때문이다. 생초보로 시작, 어언 1년을 넘기면서 이제는 ‘아리랑 낭랑’ ‘고향무정’ ‘홍도야 울지 마라’ 등 노래를 제법 반주할 수 있게 됐다.

 오씨는 “그동안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노래는 가수들만 하는 줄 알았다. 내가 직접 기타를 들고 음악을 하니 청춘을 다시 찾은 것처럼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함께 기타를 치는 김순기(81·여)씨는 “몸이 아파 누워 있다가도 악기만 들면 아픈 것을 싹 잊는다. 공연단 연습날은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고 덧붙였다.

 오씨와 김씨가 활동하는 공연단은 ‘산골노인의 음악세상’. 무주군의 65세 이상 주민들로 구성된 실버 공연단이다. 30여 명이 아코디언과 키보드·통기타·색소폰 등을 다루는 합주단이다. 이 실버음악단이 지방축제 등 문화행사나 외부 공연에 초청을 받게 되면서 지역명물로 뜨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제16회 반딧불축제’의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난달 30일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문화원연합회 창립 5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 공연할 예정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행사가 취소돼 서운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이달부터는 무주군 종합복지관이 월·수·금요일에 마련하는 런치 콘서트에 무용·댄스팀과 함께 출연할 계획이다.

 ‘산골노인의 음악세상’은 지난해 3월 무주문화원이 ‘어르신 문화학교’ 사업으로 시작했다.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즐거운 여가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사업이다.

 회원은 10여 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30여 명으로 불었다. 교사·공무원 출신이 3~4명이고, 대부분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악기는 복지관에서 빌려 화·목요일 각각 2시간씩 연습을 한다. 처음엔 기본 음자리나 계명을 읽을 줄도 몰라 애로를 겪었다. 강사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단체로 그만두는 등 해프닝도 겪었다.

 김내생(69) 문화원장은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나이라 회원들이 악보나 코드를 손바닥에 적거나 큰 종이에 그린 뒤 각자 집의 방벽에 붙여 놓고 암송하는 등 남몰래 숨은 노력을 많이 했다”며 “다들 열의가 충만해 내년부터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노래·연주를 통한 음악봉사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낙표 무주군수는 “전체 2만6000여 명의 주민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0% 가까이 될 정도로 많다”며 “나이 들면서 찾아 오는 우울증·외로움을 떨치고 즐겁고 신나는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스포츠·문화·예술 등 다양한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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