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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 '이모'찾는 한국, 낯선사람 보다 무서운 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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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어하기 힘든 분노가 있다. 바로 이런 사건을 접할 때다. 잠든 7세 초교 1학년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한 용의자 고모(23)씨. 그는 ‘이웃집 삼촌’의 가면을 쓰고 가장 끔찍한 악의 얼굴을 보여줬다. 되풀이되는 아동 성폭행 문제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우린 이렇게 무능한 어른일 수밖에 없는가.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안전한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학교는 허울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의 41.4%가 주거지 인근에서 발생한다. 가해자의 27.4%는 친인척을 포함해 ‘아는 사람’이다.
고씨도 피해 아동의 부모와 안면이 있어 가족 관계와 집안 구조에 훤했다. 안부를 가장해 아이들은 잘 지내느냐고 캐물어 범행에 악용했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도 ‘이모님’을 찾을 정도로 한국인은 ‘유사 가족’ 관계 형성에 거부감이 없다. 그런 만큼 낯선 사람보다 무서운 것은 친근한 가면을 쓴 이웃집 범죄자다.

#음란물 범람 사회: 검거된 고씨는 “아동이 등장하는 포르노를 즐겨 봤다”고 진술했다. 범행이 전적으로 그가 본 음란물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씨를 자극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경남 통영의 초등생 납치 살해 범인의 컴퓨터에서도 아동 포르노를 비롯해 음란물 70여 편이 나왔다. 클릭 몇 번으로 너무나 쉽게 음란물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음란물을 보거나 배포하는 것에도 지나치게 관대하다. “문제는 구조적인데, 음란물 탓만 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 건수는 2007년 857건에서 2011년 2054건으로 크게 늘었다. 붙잡힌 성범죄자들은 하나같이 음란 영상을 봐 왔다고 진술한다. 이대로 두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취약한 육아 환경: 아버지는 안방에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PC방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동을 1분도 혼자 두지 않는다’는 육아의 원칙을 지키기 힘든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하지만 부모가 더욱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언론 보도를 뜯어보면 A양이 살고 있는 집은 육아에 적당한 구조는 아니다. 창이 없어 문을 열어두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결국 취약계층이 흉악 범죄에 노출되는 설상가상의 불행이 일어났다.

#어른의 자격: 아동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급조된 대책은 부작용을 낳는다. 7월 말 학교보안관이 55차례에 걸쳐 어린이를 성추행한 사건은, 여론에 밀려 허둥지둥 내놓은 대책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새로운 피해자가 나올 때마다 무능한 어른 중 한 명이라는 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전영선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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