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보통선수'의 우울한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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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병 조지현(23).

그는 서울 중대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졸라 야구를 시작했다. 배명중 · 고를 거치면서 늘 주전으로 뛰었고 성실했다. 고3 때는 주장을 맡았다. 몇몇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야구를 시작하며 학교 수업은 제대로 받은 적이 없지만 단국대 경영학과 97학번이 됐다. 학과는 고교 감독이 정해주는 대로 따랐다.

그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길은 한 가지. 프로야구 선수뿐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야구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졸업 후 프로에 진출한다 해도 군대가 문제였다. 그러던 중 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상무에서 입대 제의가 왔다. 상무 김정택 감독의 눈에 띈 것이다. 3학년을 마치고 1999년 12월 16일 상무 유니폼을 입었다.

상무에서도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했다. 주전 우익수에 2번 타자. 지난 12일 현대 2군과의 경기에서 프로야구 20년 동안 여덟차례밖에 기록되지 않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그를 슈퍼스타급은 아니지만 공 · 수 · 주 3박자를 갖춘 가능성 있는 선수라고 평가한다.

대학과 군대에서 철이 들고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미래는 '장밋빛' 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장래가 불안해 여자 친구도 못 사귄다" 고 말한다.

우선 그에게는 내년 프로에 입단할 자격이 없다. 내년 2월 제대 예정이지만 현재 휴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올해 프로야구 지명 대상 선수가 아니다. 그는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 자퇴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프로야구 규약에는 자퇴한 날부터 1년 동안은 프로팀과 계약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과거 대학선수들이 편법으로 프로에 일찍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장치다.

프로야구 이사회는 상무를 2군 리그에 참가시켜 놓기는 했지만 대학을 휴학한 상무 선수가 제대 후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길은 열어놓지 않았다.

또 매년 6백70명 정도의 지명 대상 선수 가운데 1백명 정도가 지명되고 이중 50여명만이 프로와 계약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프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게다가 98년부터 외국인선수가 도입되면서 외야수가 프로 주전이 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올해 외국인선수 보유 한도가 늘어나 최근 아마야구에는 외야수 기피증까지 생기는 추세다.

그가 고교와 대학 시절 자신의 능력을 운동에만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운동 선수를 '기계' 로 만들어 놓는 우리 학원 스포츠의 고질적인 병폐다. 또 상무에서 제대하더라도 프로에 입단할 수 없는 불합리한 규약은 아마.프로간의 협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외국인선수 보유 한도를 늘려 외야수 기피증이 생긴 것은 프로야구 구단 사장들이 아마야구 육성에는 관심이 없다는 증거다.

조지현. 그는 야구를 시작하고 13년 동안 정해진 규칙대로 운동에 전념해온 '보통 선수' 다. 그러나 현재 그에게 돌아온 것은 불투명한 장래뿐이다. 그의 불안한 미래는 일부 스타들의 화려함에 가려진 보통 야구선수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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