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찰스 존슨 '말린스의 봉인을 열다'

중앙일보

입력

마치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저주의 뚜껑이 열리기라도 하듯, 메이저리그 전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플로리다 말린스의 마운드가 지녔던 '무한한 가능성'이 점차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1998년의 '번개 우승' 이후 파산선고를 받았던 말린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들을 깡그리 팔아치웠고, 이에 야구팬들의 눈은 마이애미를 떠났다. 그러나 데이브 덤브러스키 단장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 각 팀에 흩어져 있는 투수유망주의 명단을 빼곡히 적어넣었고, 그 중 대다수를 자신의 선수로 만들었다.

지난 13일에 나온 A.J. 버넷(24)의 노히트노런도 덤브러스키의 철저한 각본에 의거한 것이었다.

알 라이터(뉴욕 메츠)의 맞상대로 말린스로 오게 된 버넷은 부상의 사슬을 떨쳐내면서 잠재했던 가능성을 폭발시키고 있다.

다리 부상에서 회복한 버넷은 7일 LA 다저스 전에서 올 시즌 첫 선발등판경기를 치뤘다. 버넷은 케빈 브라운과의 맞대결에서 6이닝 3안타 1실점으로 선전했지만 패전투수가 됐다.

그릭고 두번째 선발등판에서 버넷은 무려 9개의 볼넷을 내주면서도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19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서는 6.1이닝동안 8개의 안타를 맞았지만, 그가 허용한 점수는 단 1점이었다. 바야흐로 위기관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숙제인 제구력만 다듬는다면, 버넷은 너클커브의 계보를 두고 웨이드 밀러(휴스턴 애스트로스)와 화끈한 명승부를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96마일의 직구를 낮게 꽂을 수 있는 브렛 페니(22)의 문제점은 구위가 급작스럽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선발투수에게 가장 큰 고비인 5회만 되면 난타당하며 일순간에 무너진 경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22일 페니는 26번째 선발등판에서 생애 첫번째 완봉승을 따냈다. 지난 시즌 5.1이닝이었던 평균 투구이닝은 7.2이닝으로 늘어났으며 8번의 선발등판 중 퀄러티스타트가 6번, 7이닝 이상의 투구도 절반에 달했다.

한계투구수의 증가는 구질의 다양화에서 비롯됐다. 변화구를 적절히 섞기 시작하면서 페니는 지난해 80%가 넘었던 직구의존도를 60%대로 떨어뜨렸다.

지난 겨울 말린스는 자유계약시장에 나온 포수 찰스 존슨을 영입했다. 덤브러스키가 그에게 후하다 싶을 정도의 계약을 안겨준 것은 최고의 수비형 포수라는 명성이나, 지난해 부쩍 좋아진 타격 때문이 아니었다. 고향팀과 그 후배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버넷의 위기관리능력이 급성장한 것도, 페니가 구질의 다양화에 성공한 것도 베테랑 포수인 존슨이 있기에 가능했다. 결국 그는 말린스의 봉인을 열 수 있는 '열쇠'였던 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