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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배경음악으론 이만한 게 없다"

중앙일보

입력

#1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 해라" .

영화 '친구' 에서 장동건(동수 역) 이 칼을 맞고 쓰러지는 대목. 애처로운 목소리로 흐르는 음악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벨기에의 뉴에이지 음악가 뤽 베위르의 앨범 '어둠은 빛을 낳고' 에 수록된 '제너시스' 다. 국내 발매된지 이제 두달째인 신보다.

이 음악은 '친구' 의 두 주인공 장동건.유오성이 출연하는 SK텔레콤 엔탑 CF에 그대로 등장하고, 보령누크의 젖병 광고에도 쓰였다.

'친구' 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음악도 같은 앨범에 나오는 '인 메모리엄' . 깊은 회상에 젖게 하는 신시사이저와 현악기의 합주는 이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뤽 베위르 열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빛 속으로' 가 KBS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에 삽입돼 여성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굿 데이 오브 프리덤' 은 KBS 주말드라마 '푸른 안개' 에서 윤성재(이경영 역) 가 애인 이신우(이요원 역) 을 만나는 장면을 아내 노경주(김미숙 역) 에게 들키는 장면에 흐르면서 충격을 더했다.

#2 "글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기에 넷츠고로 전하고 싶습니다. "

영화배우 한석규가 바닷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VTR에 담아 넷츠고의 비디오메일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 애인을 감동시킨다는 내용의 SK텔레콤 CF다.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의 '바다 위의 피아노' . 마이클 니만이 음악을 맡았던 영화 '피아노' 를 떠올리게 한다.

두루넷 CF(정우성의 러브레터편) 에서 사용한 음악도 가뇽의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 다. 광고의 배경과 컨셉트가 음악의 제목과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 이정재.이영애 주연의 영화 '선물' 에서도 그의 '죽은 누이를 위한 노래가 이영애의 테마로 흐른다.

TV드라마.CF.영화에서 뉴에이지 음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뤽 베위르를 비롯해 앙드레 가뇽.유키 구라모토.시크릿 가든.아디무스 등의 음악이 영상매체와 결합하면서 음반 판매도 부쩍 늘고 있다.

유키의 앨범은 국내에서만 5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18~19일 예술의전당과 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그의 공연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가뇽도 최근의 인기를 타고 오는 6월 17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3 최근 광고계의 화두 중 하나는 '자연으로의 회귀'

특히 자칫 차가운 이미지를 주기 십상인 첨단 이동통신 광고에서 훈훈한 인간미로 감싸면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 위해선 뉴에이지 음악이 효과적이다. 자연과 고향과 추억 등 잊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의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나지막하게 다정한 목소리로 다가와 잠시나마 일상의 무게를 잊게 만든다. 듣는 이를 위무하는 '진정제' 라고나 할까.

요즘 한창 뜨고있는 베위르의 음악적 주제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추는 한줄기 '빛' . 신시사이저 또는 현악합주의 풍부한 음향 위에 보탠 소프라노나 플루트 선율이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 '아나키스트' '찜' '접속' 에 이어 '친구' 의 음악감독을 맡은 작곡가 최만식(35) 씨는 "베위르의 뉴에이지 음악은 서정성과 음악적 완성도가 뛰어난 데다 슬프고 우울하면서도 값싼 센티멘탈리즘에 빠지지 않아 깊은 여운으로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며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구권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헨릭 고레츠키의 음악적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고 말했다.

또한 날카로운 음색의 대조 없이 부드럽고 느린 기악곡이라 부드럽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유려한 선율을 펼쳐낸다.

이러한 속성은 일상생활의 배경으로 음악을 듣는 최근의 경향과 잘 맞아 떨어져 클래식과 팝음악 어느 쪽에서도 편안함을 찾지 못하는 도회지의 성인층에게 인기다. 앙드레 가뇽.유키 구라모토 등의 피아노 독주는 군더더기 없는 압축된 정서로 은은한 여운과 향기를 발산한다.

유키 구라모토.앙드레 가뇽 등의 국내 공연을 기획해온 크레디아 정재옥(39) 대표는 "국내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특히 20대 여성들에게 인기" 라며 "음반과 공연으로 소개되기 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을 통해 '얼굴 없는 음악' 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 말한다.

뉴에이지 음악은 또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팝송이나 가요에 비해 클래식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부담없이 다가오고 특히 선율미가 뛰어나 영상을 돋보이게 하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게다가 가사 없는 기악곡이 대부분이어서 영상은 물론 대사를 돋보이게 하는데도 전혀 무리가 없다.

드라마 '푸른 안개' 의 음악자문을 맡은 아이드림 미디어 김정호(38) 대표는 "최근 국내 광고음악의 경향은 가요.팝송과 뉴에이지 음악으로 크게 양분된다" 며 "뉴에이지 음악은 클래식 못지 않은 예술성을 갖추고 있어 종래 기업 이미지 광고에서 단골로 등장했던 클래식 대신 자주 사용되고 있다" 고 분석했다.

빠듯한 제작 마감시간에 댈 수 있는 '완제품' 인데다 경제적이란 점도 강점이다.

TV 드라마나 영화음악은 제작과정의 속성상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천편일률적이고 표절 시비가 일어날 때도 많다. 그럴 바에는 주제가만 작곡한 후 나머지는 기존의 좋은 곡을 골라 쓰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게다가 국내에선 드라마 음악으로 사용된 곡에 대해선 저작권료도 받지 않는다. 음반사가 홍보 효과를 고려해 오히려 드라마 작가나 연출가, 음악감독 등에 사용을 권유하는 편이다.

▶뉴에이지 음악이란…

뉴에이지 음악의 원조는 1964년 '경쟁과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뒤틀린 세계' 를 조롱하면서 '선(禪) 명상을 위한 음악' 이란 앨범을 발표한 토니 스코트. 80년대초 조지 윈스턴.야니.엔야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공연보다는 음반을 통해 소비되며 클래식.재즈.포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절충적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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