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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채이자 연 4540억 절약 … 공기업·가계 빚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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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물이 달라졌다는 거죠.”

 한국 경제의 사령탑 기획재정부는 27일 들떴다.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표정 관리가 안 됐다. 그러나 축포 속에 가려진 9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공기업 부채 등에 대한 관리는 필요하다. 등급을 올린 무디스도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 문제다. 긍정적인 대외 평가를 서민이 체감하는 국내 경기로 연결해야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무디스가 27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올렸다. 6월 신용등급 평가를 위해 정부와 연례협의를 한 지 두 달 만이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방한한 토머스 번 무디스 아시아 담당 선임 애널리스트. [연합뉴스][사진크게보기]

 27일 무디스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상향으로 한국은 ‘더블 A’ 클럽에 들었다.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 징표가 나온 것이다. 은성수 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영국 축구로 치자면 챔피언십리그(2부 리그)에서 뛰다가 프리미어리그(1부 리그)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디스의 발표는 전격적이었다. 무디스는 지난 4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로 바꿨다. ‘긍정적’이 되고 나면 6개월~1년은 지나야 등급이 오른다. 안 올리고 세월만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나 무디스는 전망 조정 4개월 만에 한국의 등급을 올렸다. 재정부 담당 국장도 이날 오전 11시50분에야 들었다. 밥 먹으러 가다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전격적이었지만 타이밍은 좋았다.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가 애플과 소송전에서 져 경제 심리가 잔뜩 위축된 순간이었다. 가뭄·태풍에 물가는 들썩이고 성장은 주춤하던 분위기였다. 경제의 동력인 수출마저 가라앉고 있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등급 상향 조정이 됐다는 점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의 등급 상향 조정은 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임이기도 하다. 무디스는 “한국의 재정 펀더멘털(기초 여건)이 매우 좋아 내·외부 위험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 등에 재정부가 매번 맞서는 ‘재정 축적론’을 무디스가 인정해준 것이다. 이에 따라 대선을 전후해 경제 정책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상당히 줄었다. “대통령 임기 말까지 ‘AA’ 그룹에 드는 게 목표”(4월 본지 인터뷰)라는 박재완 재정부 장관의 꿈도 이뤄졌다.

 등급 상향에는 한국이 잘한 점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돋보인 면도 크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다들 재정이 난리인데 상대적으로 건전하고 산업경쟁력도 괜찮았다”고 진단했다.

무디스 역시 “한국은 세계 금융위기를 훌륭하게 방어해 내면서 외부 충격에 대응하는 경제의 활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노는 물이 달라지면서 생긴 첫 효과는 외국 자금 유치다. 보통 신용등급이 한 단계 오르면 조달 금리가 연 0.15%포인트 낮아진다. %로는 얼마 안 돼 보이지만 연간으로 4억 달러(4540억원)의 조달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망가지면서 높아진 아시아권 채권 수요가 한국으로 더 많이 몰릴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 이번 국가 신용등급 상향으로 정부 지분이 많은 산업·기업은행의 신용등급도 ‘Aa3’로 동반 상향 조정됐다.

 다른 신용평가사의 등급 상향 조정도 기대할 만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한국 정부와 연례 협의를 마쳤다. 통상 9~10월 등급 조정에 대한 발표가 있다. 이 가운데 S&P는 한국 경제에 가장 인색하다. 신용등급(A)은 물론이고 등급 전망도 3개사 중 유일하게 ‘안정적’에 머물러 있다. 북한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을 매우 크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디스의 등급 상향으로 S&P와 무디스의 등급 차이가 두 단계로 벌어지면서 S&P·피치의 조정 가능성이 커졌다. 피치는 지난해 11월 3개사 중 가장 먼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꿨다. 상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신평사의 등급 상향 조정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관리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답은 무디스가 제시했다. 무디스는 등급을 올리긴 했지만 공기업 부채와 가계 부채 문제를 여전히 한국 경제의 난제로 꼽았다. 김정식 연세대 상경대학장은 “대외 교역의 위험을 잘 관리하면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잘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좋은 뉴스이긴 하지만 금융 시장 흐름을 단번에 크게 바꿀 만큼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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