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정치흥정 안돼 현실맞춰 풀고 묶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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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실을 고려해 모처럼 줄거리를 잡아가던 규제 완화가 '개혁 후퇴' 라는 명분과 여야 공방으로 정치 쟁점화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강운태(姜雲太)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이나 진념(陳稔)경제부총리 등은 지난 3, 4일 연이어 부채비율 2백% 탄력 적용, 규제 전반 재검토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의 개혁 마무리론이 나오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중단 없는 개혁' 을 강조하면서 당정이 추진하던 규제 완화도 '개혁 후퇴' 로 변질되고 말았다.

더구나 전경련 등 재계가 목소리를 내고 한나라당이 '재벌 해체 정책 반대' 를 당론으로 내세우자 규제 완화는 정치 쟁점이 돼 당정이 원래 추진하던 내용에 대한 면밀한 토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재벌 옹호 대 재벌 개혁의 2분법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규제 완화를 순수한 경제 논리로 다뤄야지 지금처럼 정치 쟁점화해서는 경제의 앞날이 어두울 뿐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내심 이같은 상황을 알고 있는 정부와 민주당도 15일 당정 협의에서 그동안 기업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켰는지 따져보고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업 규제를 풀어주기로 원칙을 정해 명분을 지키면서 문제를 풀어갈 여지를 남겨 놓았다.

청와대도 재계가 1998년 2월 출자총액을 없앨 당시 정부와 했던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보고 예외 조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오전 진념 경제부총리와 민주당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 등 당정 고위 관계자들은 조찬 간담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 한도 완화 등을 논의, 30대 계열 기업군의 출자총액 한도 기본틀을 현행(순자산의 25%)대로 유지하되 예외 적용 범위를 탄력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李의장은 "올 들어 30대 계열 기업의 출자총액 규모가 순자산의 30%를 넘었고 금액도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선단식(船團式)경영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데 (당정이)인식을 같이했다" 며 "출자 규모가 커져 기업 건전성이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에서 규제를 풀 수 없다" 고 말했다.

李의장은 이어 "기업의 투명성과 건전성.수익성을 높인다는 전제 아래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면서 "출자총액 한도를 2002년 3월까지 순자산의 25%로 낮추자는 1999년 정.재계 자율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정책의)기본틀을 흔들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3년간의 구조조정을 희석시키는 것" 이라며 재계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또 16일 열릴 예정인 전경련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회의에서 재계의 의견을 듣고 규제 완화 폭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송상훈.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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